I + Floor - 아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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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풀리면 찾아오는 병들은 내가 여유로워지길 일부러 기다리기라도 한듯 괘씸한 그 배려심에 매번 감사하며 분노한다. 날씨와 상관없이 반작용처럼 찾아오는 병들은 이미 인생에 너무도 익숙한 루틴이 되었다. 몸이 병들어 누우면 늘 많아지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생각이었다. 처리해내지 못하고 쌓인 이메일들처럼 머리 저 한켠에 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결제하기 시작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이것도 나름의 행복아닐까 란 생각도 든다. 뭔가 움직여야 할 것 같은 강박을 잠시나마 강제로 멈추게 해주는 시간이다.
내 친구들에겐 요즘 감기가 유행이다.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일들 찾고 있는 친구들도 많고 관성적으로 해왔던 대학 전공을 따라 일자리를 구하겠단 친구들도 여럿, 아무 것도 정하지 못한 친구는 더 많다. 다들 그렇단 것을 알기에 기침마냥 만나면 다들 그 얘기를 조금씩 꺼낸다. 내 옆의 누군가가 그런 생각, 그런 시기를 겪고 있으니 또다른 친구에게 옮겨간다. 다들 머리가 복잡하다. 고통보단 생각이 많아지는 지독한 감기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도 병에 걸린다. 마땅한 약 없이 서서히 침식하는 그것은 우리가 병이라 명명하지 않았을 뿐 잘 생각해보면 크게 진배없다. 나도 가끔 불현듯 가진 의문이나 호기심을 해결하지 못하면 절대 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소한 감기부터 삶에 찌들어 괴로움에 사무치는 병들까지 부류는 다양하다. 때론 감기처럼 지나가지만 가끔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증상을 자각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나머지 끝까지 갔음에도 그것이 병의 일종인지 자각하지 못하기도 한다.
추운 새벽에 집까지 걸어가던 중 멈춰서 쉬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추위. 승용차나 버스없이 거의 택시만 지나다니는 바람도 안부는 그 겨울밤에 발은 아파오고 손은 시려워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은지 한참. 핸드폰을 꺼내기도 힘들어 몇시인지도 아는게 별로 중요하지 않을 때. 일단 집에 도착한다는 집념 하나로 끝없이 걷던 그 순간이 가끔 그립다. 2~3시간을 쉬지 않고 걸으며 오만 생각을 다 하곤 했었던 그 시기. 바쁠 것이 하나 없었는데 왜 그렇게 쫓기며 살았을까. 가장 걱정없을 시기에 고민은 왜그리 많았는가. 낫지 않을 백일해를 앓으며 진짜 청춘이라고 불리울만한 불안함으로 살아가던 시기였다. 나이 듦으로 얻게 되는 축복 중 하나는 유연함과 동시에 무던함이거늘 나는 가끔 그런 고민들과 함께했던 감정들이 그립다. 내가 그만큼 몰두할 것들이 이제 앞으로는 찾아오지 않을걸 확신한다. 아마 그정도의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더욱 줄어들테니.
자신이 너무 여유부리나 라고 말하던 친구. 그 기침 한번에 나는 또다른 감기의 유행을 느낀다. 우리가 겪은 코로나라는 질병을 뒤로 진정 우리가 고통 받았던 코로나 블루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병이 더 무섭다. 1등도 좋지만 2, 3, 4등의 삶도 즐겁다. 최고가 되면 짜릿하겠지만 최선으로도 행복하리라 믿는다. 열심히 하면 무언가를 얻지만 그와 더불어 놓게될 것들이 더 많다. 행복하려 살고 싶지만 성취가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감기에 많은 사람들이 콜록거린다.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을 것이다. 즐겁게만 산다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 스물, 스물 하나의 어느 겨울날 느꼈던 걱정과 고민, 감정들이 그립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하다. 그때보다 해야할 걱정의 레벨은 차원이 달라졌건만 나는 그때보다 더 행복해졌다. 정말 많은 만남과 기회들이 나를 여기까지 끌어줬지만 그 중에서도 내게 글쓰기가 불러온 나비효과는 가히 태풍에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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