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 신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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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속 타이어 마찰음은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 순간이 찾아와 날개없는 착륙을 하기 전까지 끝없는 야간 비행에 나선다. 내가 알던 세상 속을 가장 높이 날아본다.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도시의 불빛이 나를 더이상 밝힐 수 없게 되었을 때 목구멍에 끼어있던 것들을 하나 둘 뱉어본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도 줄리도 없는 것들을 겨우 닿는 불빛으로 들여다본다. 본질과 그 내면의 무언가. 내가 의식하려 하지 않았지만 존재하였던 그것들.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들. 내가 바라지 않으면서도 놓지 않으려는 것들. 아직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못한 것들이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도록 뒤엉켜 마치 종양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이것은 나다.
각 계절의 산을 보고 있으면 그 변화는 마치 사진과 같다. 늘 바라봄에 있어 변화를 느낄 수 없지만 분명히 시간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언젠가 자각한 그 순간 변화를 실감한다. 그런 변화의 체감은 연속되지 않는다. 분홍에서 초록, 초록에서 주황, 주황에서 하양으로 서서히 바뀌어 감에 따라 내 기분도 그렇게 바뀐다. 모든 변화는 그렇게 느껴진다. 내 속의 것들도 그렇다. 하루만큼의 우리와 한달만큼의 우리는 다르다. 내 안의 무언가도 그렇게 바뀌어 갈까. 아니면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내 안에서 굳어버릴까. 더이상 뱉을 수 없을 때까지.
깨어졌던 도자기 그릇의 결대로 다시 이어붙이면 그 틈만큼의 부실함이 생겨난다. 본래의 용도와 아름다움을 돌려낼 수 있겠지만 그 흉터는 영원하다. 그럼에도 또다른 형태의 균열이 생겨날 수도 있다. 늘 그렇게 생겨난 금들이 모여 무늬를 이룬다. 그 무늬는 결국 또 다른 도자기의 모습이 되어 아름다운 균열의 꽃이 된다. 또다시 깨질지언정 인고의 시간을 통해 붙여낼 수만 있다면 분명 아름다움을 가지리라.
계절이 흘러간다. 그에 따라 온도가 변화한다. 뜨거워졌다 차가워지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담금질된다. 그렇게 시간을 두고 이뤄지는 담금질은 또다른 강인함을 가지게 해준다. 결국 도자기는 본래의 강인함을 되찾을 것이다. 그것이 가루가 되지 않는다면.
가끔 귀에 걸린 노래 소리가 더이상 커질 틈이 없음을 느낀다. 익숙해져버린 데시벨을 더 키우고자 올려본 게이지는 천장을 치고 만다. 평소에는 들을 리 없는 소리로 듣고 있는 내 귀는 안녕한지 묻고 싶어진다. 아무렴 어떤가. 좋은 노래들 크게 듣는 건데.
깜깜한 어둠. 내가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조차 알 수 없을 때 더듬거리는 것들이 있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었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축축하게 썩어가고 있다. 완전한 소멸을 바라지만 그러지 않으리란 것을 알기에 한참을 넣지 못하고 쥐고 있는다. 그렇기에 가끔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받지만 그와 동시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간다. 죽음과 가까워진다.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을 알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없었지만 벗어나 있던 때에 돌아가게 되는 것은 한없이 늘어지게 된다. 관성과도 같은 것이다. 끝이 없으리라 여겼던 야간 고속도로에도 끝은 있다. 종착점에 닿지 않길 빌며 가끔 이대로 깨지 않을 꿈을 꾸고 싶기도 하다. 있지만 없는 것을 위한 시간이 되리란 것을 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무한한 어둠은 그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렇기에 난 어둠이 좋다. 분홍, 초록, 주황, 하양 모두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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