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와

추적추적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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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비가 내리는 소리가 마음을 채운다. 어떤 소리를 내더라도 그 사이에 묻힐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격한 바닥과의 충돌로 다시 튀어오르는 빗방울이 우산으로 가렸던 바지끝단을 급하게 끌어안는다.


그에 비해 눈은 조용하다. 아무런 소리없이 내린다. 적적한 그 풍경에 채워지는 것은 하얀 빛뿐이다. 태양을 가리지만 하얀 하늘 아래 그리고 하얀 길 위로 내리는 하얀 것들로 한없이 회색빛으로 채워진다. 가장 무채색의 하루 중에 차 안에 앉아 조용히 노래를 들으며 창 밖을 보았을 때 그 기분은 아련함이 가장 어울렸다.


떠오르는 것도 없고 뚜렷한 감정이 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뭐라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던 그 기분이 즐거움과 대척점에 서 있단 것만은 확실했다. 심장과 폐를 담는 흉부의 공기가 내려앉듯 온몸이 무력함에 빠지는듯 했다. 굳이 속도를 내지 않았고 굳이 뛰지도 앉았다. 천천히 내려오는 눈처럼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아니 도로 위의 차들을 보면 나만 느린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속 슬픈 장면엔 슬픈 노래가 어울리듯 이런 상황엔 그런 노래가 듣고 싶어 틀었다. 흔히 느끼긴 힘든 그 순간을 피한다기보단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나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말고 다른 이들도 같은 느낌이 든 적 있지 않을까. 일을 끝내고 더이상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오늘 하루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 위에서 놀라우리만큼 조용한 그 순간. 늘 같던 풍경이 잠시 그렇게 틀어지는 그 순간.


새벽에 혼자 조용히 배달을 다니던 그 때에도 그랬었고 나 홀로 자전거로 찾아간 광안리의 바다도 그랬다. 지금보다 전에 나 혼자 집까지 3시간이고 4시간이고 걸어가던 새벽의 길이 그러했고 영화를 찍고 집으로 가던 그 길도 그러했다. 분명 그런 순간은 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라기보단 나 혼자 일때 극대화 되는 그 느낌.


그 느낌이 중독적이라면 좀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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