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 소음

슈게이즈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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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끝을 바라본다. 그제서야 삐뚤어진 앞코의 정렬을 눈치챈다. 나말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오와열, 보도블럭과 겨우 맞춘 각은 이유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의식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자세와 구부정한 어깨, 기이하게 뻗어나온 목과 경사진 골반. 아무도 말을 걸지 않으면 좋겠단 표정. 걸어가고 기다리는 모든 행동에 영혼이 없다.


사람이 많은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나를 아는 이가 너무 많다는 것. 별 의미없는 대화를 성의란 단어로 포장해서 끊임없이 들고오는 사람들. 감정을 숨기고 온 그들에게 내 감정을 보일 순 없으니 치밀하게 돌아가야만 하는 머리. 이익 관계에 맺어진 족쇄는 그 어떤 짐보다 무겁고 잔인하다. 끝이 나면 좋겠다는 그 순간들의 연속성 사이를 헤매이며 물잔만 끊임없이 비워낸다. 밖이 싫은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연속이 싫은 것이며 가끔은 외부와의 단절도 필요한 법이다. 의사소통없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소리의 여부와 상관없이 고요하다. 내가 저들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저들도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해주기를 바란다.


기가 빨린다는 적절하고도 아주 잘 완성된 표현을 통해 그 노고를 여실히 드러낼 수 있다. 어쩔때엔 사람이 많은 번화가 한복판보다 그리 친하지 않은 지인과 타게 된 엘리베이터가 더 괴로운 법이다. 비슷한 길이어도 일부러 겹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집에 가며 필요하지 않다면 구태여 얘기를 걸지 않는다. 침묵은 그런 이들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이며 암묵적 스마트폰 타임은 끝내주는 휴식이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과 1대1로 만나는 것 만큼 괴로운 일이 없다.


쉽게 대화 도중 농담을 떠올려 내거나 여유로운 장난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서커스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무례의 기준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나같은 이들에게 말장난은 친밀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늘 어려운 처세술과 대화법. 상대가 급하게 치고 들어온 농담을 제대로 받아내는 것도 요령이며 매너인데 학창시절부터 리시브가 어려웠던 내게 이런 보이지 않는 서브도 너무 고난이도로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말이 우연히 정확히 꽃힌다면 가끔 뿌듯함도 느끼도 정반대로 상대가 당황한다면 끊임없이 복기하기도 한다.


친하지 않은 이에게 여유를 부리는 것. 어쩌면 가장 어른다운 면모가 아닐까 싶기도 한다. 단순히 점잖게 웃고 차분한 것을 떠나서 처음보는 누군가의 긴장을 수월하게 풀어주고 쉽게 대화로 끼어들게 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가장 동경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향적 몸부림은 그리 산만하지 않다. 그냥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혼자 괴로울 뿐인지라. 가끔 내다보는 허공과 순간 사라지는 몇초들이 내 피로와 귀가욕구를 실감나게 한다. 가끔은 필요 이상의 식사자리나 카페도 꺼려지고 가능하면 혼자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


무언가를 해내야겠단 마음과 다르게 망설이게 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뭐가 이상해보이길래 뭐가 어색하길래 굳어버린 돌처럼 멈춰서있다. 나는 때때로 이상한 사람이 될까 두렵고 때때로 불필요한 피해를 끼칠까 두렵고 때때로 누군가의 적이 될까 두렵다. 언젠가 가장 자유로운 내가 되길 바랬지만 끝까지 저 생각들은 내가 날아오르지 못하게 한다. 그냥 조용히 지내길 바라는 사람처럼. 누군가 앞에 나서서 소리내본 경험이 너무 적은 탓일까. 내가 나를 믿지 못한 탓일까. 내가 그냥 나여서 그런 것일까. 한없이 조그마한 내가 싫지만 커질까 두렵다. 그런 작은 구멍이 편하고 아무도 내려다보지 않을 것 같은 공간 아래가 좋다.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한참 들기 시작하면 그저 나가기 싫다. 끝나지 않을 지하철에 올라타거나 도착하지 않을 버스를 타고 노래나 하염없이 듣고 싶다. 영원히 멈추지 않을 설국열차따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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