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루어진 형벌

보이지 않는 죄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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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병처럼 자라난 곰팡이는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땐 이미 늦은 것이다. 썩은 상처로부터 피어난 것은 자연에서 보기 힘은 오묘한 색을 내며 울려퍼진다. 그 어떤 사명감도 없이 찾아 들어간 곳에 나도 모를 기구한 책임을 지고 벼랑 끝의 무언가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 붙잡고 버티게 된다. 서쪽에서의 죄를 동쪽의 나라에서 씻어내리는 형벌. 그 시작과 끝엔 내가 있다.


아름다움은 시작따윈 없고 오직 눈먼자들만이 아름다운 풍경을 논한다. 진실로 눈을 뜬 자들은 눈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거룩한 시작과 절대 숭고하지 못할 끝에 유기성따윈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그 이어짐은 그 너머로 이어진다. 대륙과 대양을 넘어 찾아온 그것은 사실 나의 그림자였고 그 어두움은 숨겨뒀던 내 추악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예상할 수 없던 느낌에 결국 도달한다. 아무런 구멍없던 바닥부터 솟아오르는 뜨거운 지하수에 쓰라림을 느껴보기도 하며 흔적을 더듬으며 나를 발견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지문 사이사이 끼여버린 흙더미에서 핏방울이 느껴지고 그것또한 나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무엇에 그리 치열하고 무엇에 그리 악착같았는가. 어차피 쓰러트릴 것이었다면 왜 끝없이 집착했는가.


모든 집착이 한방향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곰팡이의 모습처럼 집착의 형태도 다양하다. 언저리에 남겨둔 것들이 하나둘 다시 붙잡힌다. 일부는 나와 함께 절벽 위에서, 일부는 그 아래에 나뉘어 당기고 당겨진다. 살아가는 것에 수많은 고집들이 나를 만들고 정의하게 된다. 내려 놓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이것이 내 고집이란 자각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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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다. 활활 타오른다. 그 속에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불이 난다. 누군가에겐 희망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절망이었을 것이다. 어딘가에 묶여 더이상 도망칠 수도 없다. 그저 그 불이 나에게 닿기 전에 꺼지길 간절히 빌 수 밖에.


아려오는 것. 그 순간은 늘 미스테리다. 도대체 그 현상이 뭐길래. 그 순간이 뭐길래. 나는 이것을 무엇이라 정의해야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이대로라면 그냥 다 끝나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정답을 알지 못한채로 끝내버리는 여정처럼. 적어도 보고서 한 쪽 끝에는 써내릴 마지막 문장 하나는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


떨어뜨린 것들을 이용하는 이들이 있는 한 또다시 한없는 떨어짐이 있을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던 중에 만날 수많은 자신은 과연 그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 지켜보기 힘들정도로 좁게 파여진 구덩이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함구할 수 밖에 없는 마음 속 영감들이 결석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은 내 세상이 되고 내 정의가 된다. 그 모습의 흉상이 내가 된다. 나는 그런 존재다.


아프다. 그런 아픔이 있다. 아픔은 늘 그렇다. 또다시 찾아온 나 스스로 내는 퀴즈에 온종일 혼란스럽다.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나를 알 수가 없다. 힌트조차 없으며 무를 수 없는 내 인생의 수수께끼가 있다. 아픔은 늘 그렇다.


당신은 무언갈 위해 불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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