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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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가지고 살아가자. 책임이 커지는 삶을 살아가자. 책임이란 것은 그렇게 나를 증명하고 곧 정의하는 단어였다. 삶의 모토를 그리 쉽고 짧게 요약하며 최대한 많은 것을 포용하려 하였고 그와 동시에 모호한 기준 속에서 모든 것이 뒤섞여 버렸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자해하고 또 자해했다. 아무렇지 않을 것에 아무렇게나 내질러 또 혼자서 혼자만의 고통을 누렸다.
푸름의 한가운데에 들어서 온통 파랑뿐인 바다에 있는 것 같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해가 지고 뜨는 것을 쳐다보고 밤이 되면 별자리를 따라 힘차게 노를 젓는다. 각자의 삶의 의미를 한 손에 꽉 쥔채로 어딘가에 있을 육지에 닿기를 갈망한다. 갈증의 끝엔 죽음보다 더한 무기력감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든 이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도 있으며 안간힘으로 버티는 이도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 한없이 약한 하나의 인간이 버틸리가 없다. 그래서 믿음을 만든다. 그것이 어떤 것이어도 좋다. 이보다 상황이 나아지리란 방향의 믿음이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언젠가 육지가 보이고 그곳에 닿으리란 꿈같은 희망.
의미가 되어주길 빌었다. 책임이 커진다는 것은 어딘가에 우두머리로 서게 될 수 밖에 없단 것이고 그에 대한 연습은 늘 어떻게든 해오고 있었다. 그 모든 일이 내게 좋은 일이 되리라 여겼고 그 모든 행동이 의미가 있기를 바랬으며 그럴려면 내가 쥐고 있어야 할 책임이 커져야 한다 여겼다. 아무렇게나 내질러진 그 몇마디가 내 삶의 전반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내가 책임의 모가지를 잡고 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잡히고 있었다.
때론 나의 것이 아닌 것에 마치 나의 것인듯 탐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 되어 누리지도 못한 무게들이 쌓여왔다. 덜어냄이 삶을 살아감에 필수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늘 덜어내지 못하던 것도 나였다. 미숙한 모든 것에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너무도 생각이 많은 탓 아니겠는가. 누구를 탓하리. 그저 내가 그렇다는데. 그 속에 있는 것을 함부로 얘기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하는가.
마음 먹는 것으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알고 있음에도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같은 색의 하늘 아래에 같은 나라에 소속되어 같은 규율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비행을 꿈꾼다. 잘못 되었단 것을 모르진 않는다. 무지가 잘못이라곤 하지만 알고 있음이 분명 더 큰 잘못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는데 그저 아무런 책임도 지고 싶지 않아 핸들을 돌리길 망설인다. 내가 한 선택이 또다른 피해를 가져왔을 때 나는 도망칠 곳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트롤리 딜레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영원히 도착하지 않길 빌고 또 빈다.
자기 해부 끝에서 마주한 것은 난도질당한 나였다. 내가 나를 알아보고자 성의없이 풀어해친 가죽과 장기들 사이로 뒤엉킨 문장들은 다 끊긴 사슬처럼 제각기 부스러진다. 힘겹게 이어나가 하나 둘 정리해보아도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지독한 자기혐오다. 내가 얼마나 무책임한 인간인지 다시 상기해보면서 어떤 빛나는 해답같은 것이 있을까 무의미한 시간만 버린다.
싫어하고 불편해야 바뀐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현재에 안주하는 이들이 아니라 불만 가득하고 반항아 기질이 있는 이들이었다. 내가 나와 불편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 잘 알기에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진실된 친구가 되기 전 당연히 거쳐가는 것처럼. 누군가와 너무 급격히 가까워지면 그만큼 단점도 크게 다가오지 않던가.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진실된 사이에 닿지 못한다. 신뢰로 뭉친 관계에 거짓은 없어야 한다.
친구는 그런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입력하면 예상되는 범위 안에서 출력이 되는 관계. 상대와의 대화가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한 선에서 이루어지면. 둘 사이에 긴장감이 없어지면. 당연한듯 하는 것들이 서로에게 늘어가면. 그럼에도 불편하지 않다면 그것이 친구다. 만남이 노동처럼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분명이 불편한 사람이 편한 사람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끔찍한 밤을 떠올린다. 아무렇지 않게 시작된 말들이 지옥이 되어 내게 돌아왔을 때. 하지만 그때가 오히려 비로소 자유로웠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내가 최고로 자유로웠다. 웃으며 기는 것보다 울며 날던 때가 더 자유로웠다. 사람은 늘 자신을 모른다.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무엇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나와 대화해야한다. 물어보고 탐구해야 한다. 내가 나이기위해 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자 가장 어려운 행위.
잠을 자기 전 떠올리는 모든 것들이 나를 쳐다본다.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은 나를 쳐다본다. 내가 그들을 보듯 그들도 나를 본다. 내가 만든 그들은 곧 나이다. 내가 가진 기억 속의 나. 내가 가진 것으로 얼추 비슷하게 흉내낸 것들. 그것들을 가지고 그들을 흉내낸다. 내가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결국엔 내가 나와 하는 연극이다. 그것이 한계다.
꿈을 꾸고 싶다. 우울한 꿈을 꾸고 싶다. 그 감정 속에서 떠오를 것들. 건져낸 그 축축함에 같이 딸려 나올 기억들이 궁금하다. 지금 당장 내 삶 한구석에 차지한 분노, 슬픔, 절망 따위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떤 차오름이 내 목구멍 아래에 쌓여 있는가.
푸름이 푸름으로 남으면 좋겠다. 회색으로 찌들은 것들을 모두 버리고 푸름으로 남고 싶다. 저물어버린 해가 언제 뜰지 모르는 채로 하염없이 해가 떠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분명히 나는 무언가를 짓밟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자국은 커진다. 밀어닥칠 비명이 너무도 두렵다. 하지만 그 푸름은 지독하게 날 숨기려 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푸름에 안겨 어둠을 배척할 것이다.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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