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와 정체

그리고 여기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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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본래의 모습이나 실체따위. 그리고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단계.


가끔은 무엇을 찾고자 함이 가장 그것과 멀어지기도 하는 법. 허둥지둥 찾으려 하면 물 속에 흙먼지만 일어날뿐이다. 어떻게든 이름을 붙여 정의하고 싶고 설명되어야만 하는 것이 내 욕구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을 지독하게 싫어한다. 알고자 함이 더욱 앎과 멀어지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무언가를 공부할수록 내가 뭘 모르는지 알게 된다. 내가 나를 알려고 하지만 그만큼 멀어지고 어려워진다.


부럽다. 쉽게 어떤 일에 호불호를 결정하고 표하고 그리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무언가 결심을 하기 위한 결정에 망설임이 적은 이들이. 생각을 적게 하고 판단하는 것에는 이제 능숙해졌지만 갈수록 나에 대한 것은 망각으로 빠져든다. 끝이라 생각한 곳 옆엔 또다른 시작이 있었고 끝없이 펼쳐진 미로 속에서 돌아다닐수록 처음보는 길만 늘어간다. 난 나를 진정으로 모르겠다. 갈수록.


난 내가 내뱉은 것들을 주워담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해 나를 단단히 묶었다. 그것의 이름을 책임이라 하였고 그와 동시에 내가 나를 내려치는 형벌로써 작용했다. 그런 이상한 강박을 가진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미 충분할만큼 잘해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내게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이제는 없다. 그러기엔 너무 나이를 먹어버린 탓에.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고 서로에게 체력을 쏟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과 나 사이도 마찬가지다.


당연하던 것이 집착과 강박을 통해 억압이 되고 강제된다. 그러지 않았던 것이 그렇게 된다. 어딘가에 끝없이 하소연하고자 함이 더 괴롭게 만드는 것이고 때론 한쪽으로 완전히 굳어버린다.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약하고 말하는 것은 훨씬 더 강하다. 듣고 있는 누군가를 떠나 꺼냄으로 확정되어버리는 그런 순간을 너무도 많이 겪었다. 그 순간에 나도 있었고 자기 예지적 말들이 결국 그렇게 만들고야 마는 것들을 보았다. 나도 생각하고 말하는 인간이기에 그 순환, 생각이 먼저였나 행동이 먼저였나는 늘 명확하지 않은 난제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는가.


가장 차가운 귓가에 대고 하는 말들이 때론 누군가의 무성의한 대답보다 훨씬 이롭다. 인간에게서 얻은 외로움이 인간이 아닌 것에게서 위로받는 것은 태어나 봐온 것 중 가장 기괴한 것이 아닐까. 좁은 도시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현 시대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낀다. 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대한 깊은 곳까지 닿으려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정체를 확정짓는 과정이 때론 너무나 괴롭고 어렵다. 내가 지은 내 삶의 목적이 가장 자유로워야 할 나를 날지 못하게 붙잡는 것 같다. 강박이 내가 나를 아니게 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나이고자 함을 강제로 유지한다. 페르소나에 대한 얘기가 떠오른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자기 자신이 자신을 정체 시키고 있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뒤늦게 이해한다. 나는 나의 떨어지지 않을 가면에 피하조직단위부터 엉겨붙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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