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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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중요해지고 그러했던 것들이 다시 아무렇지 않아진다. 무엇이 기준이 되고 무엇이 중심이 되는진 나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되어지지 않는 것들은 마치 영원처럼 갇힌 흙 속 뿌리들처럼 서서히 썩어간다. 흑과 백 속에서 어느 지점의 회색은 투명해지고 결국 그 어느 것도 볼 수 없게 된다. 느껴지는 것들은 가짓수가 줄어가고 그 속에서 가만히 서서 쳐다보고만 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매일같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가장 방황하며 가장 슬프던 시기를 뛰어넘어 해답을 얻진 못했지만 이젠 구속받지도 않는다. 사실 그것보단 지금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결국 다 그렇게 흘러감을 느끼다보면 무력해지곤 한다. 거스름은 마음가짐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꽃힌 기둥은 사라지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기에 그 끝에서서 늘 뒤를 돌아본다. 습관처럼 뒤로 걷다보면 부딪힌다. 어딘가에 깨지고 멍이든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또다시 시작이다. 나도 결국 별 것 없는 것이다.
그렇게 행했던 죄들이 하나 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때쯤엔 나는 어디로 가 있을까. 나의 죄는 끝인걸까. 나는 결국 여기에 온 것일까. 하지만 지구는 둥글다. 그리고 나는 한 곳으로 끝없이 걷는다. 내가 걸어온, 앞으로 걸어갈 길에는 늘 그것들이 있을 것이다.
빨간 핸드폰과 파란 자동차 사이 어딘가에 흑색의 내가 앉아 있다. 지겨운 말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내 입구멍과 상처가 쉬지 않는 손끝엔 늘 무언가가 있다. 끝인줄 알았던 교정은 유지장치를 달고 있고 담배를 피지도 않는데 빈 손이면 허전한지 늘 무언가를 찾는다. 흰 연기보다 더 진한 입김을 내뱉고 탁한 미세먼지보다 더 자욱한 머릿 속이 과연 나를 뭐라 하는지. 나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마지못해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를 뻗는 사람처럼. 사실 능동성따윈 사라져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 의지도 의욕도 없이.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는 강박도 결국 가죽만 남긴 채 굶어 죽은 것 아닐까. 그렇게 가끔 생각해본다. 나는 도대체 뭘하고 있는거지.
긍정적인 생각보단 생각자체를 안하게 된다. 과도한 생각이 나를 끌어내린다.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머리를 채운다. 생각의 가소성에 취해 자기파괴적으로 변해버렸을즈음엔 나도 나를 이젠 모르겠다고 한다. 인류가 언젠가 파멸의 길로 걸을테니 그 시작은 자기 부정이라 하였다. 현실을 직시한다기보단 외면함으로써 얻는 것이 현대의 인류를 만들었다는 것. 허무하다란 것은 인간의 모든 것에 가장 잔인한 말이다. 모든 가치는 인간이 부여했다. 모든 수단은 인간이 창조했다. 전쟁 한 번으로 모두 잿더미가 되는 화폐와 가장 쓸모없어지는 사치품들. 이제는 그 목적을 부여하고 움직이기 위해 나를 알아야 한다기보단 나의 원리를 알고 싶다.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와 싫어한다보다는 나는 왜 이 순간에 이런 행동을 하는가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선택이라고도 부르기 힘든 무의식 적 행동들. 나는 나를 내 옆의 누군가보다도 모르지 않을까. 비교를 하긴 싫지만 결국 내 판단의 근거는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게 되면 결국 나는 나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나를 바라보기 싫어지는 것이다. 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나를 해부한다는 것. 그것을 기피하고 싶은 이유는 결국 나도 내가 못났단 사실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더 나아질 것도 없고 더 힘들어질 것도 없다. 그냥 그걸 아는 것조차 싫은 것이다. 가장 나약해진 순간일수록 나는 더 나약해진다. 무한의 악순환 속에서 가려움은 커져만간다.
참으로 작고 창백한 점. 그 속에서 작고 창백한 것들. 그 창백함이 싫어 내 주변을 색으로 가득 채우려 했나. 어렸을 적부터 모아오던 강렬한 원색감의 물건들. 그 속에 난 늘 창백했다. 깨달았다. 사람은 늘 모자란 것을 좇는다. 나는 그런 색깔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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