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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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나 자신을 손으로 끝없이 끌어모은다. 쑨 위안과 펑위의 Can't help myself처럼 잡아지지 않는 것을 손으로 열심히 저어보지만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삶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고 내 의도대로 되는 것도 없으며 내가 알지 못하던 것에 괴롭고 내가 알던 것도 순식간에 모르는 것으로 변하고 만다. 마디 사이의 얇은 공간을 타고 흐르는 검붉은 액체는 나 자신이면서 나의 것이 아니다. 내게서 나온 것이지만 나의 소유가 아니니 내가 어디가서 내 것이라 떳떳하게 말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읽고 또 읽는다. 눈을 감고 읽는 책. 어둠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글자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보는 세상이 더 어렵다. 윤곽선만 간신히 드문거리며 나타나고 마치 역광 속에 서있는 사람처럼 이목구비를 뚜렷히 볼 수 없다.
처음부터 피우고자 했던 것은 사실 늘 달라짐이 없었고 그걸 망각한채로 꺾여버린 줄기 앞에서 좌절했다. 다시 올바르게 나아가지 못하리란 믿음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라나 좀먹는다. 병들어버린 것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썩는다. 쓰러져버린 것은 아무짝에 쓸모없고 그로인해 그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뿐.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한다. 물 속에서 보는 하늘의 모습처럼 명확한 것 없이 단편적인 시선 속에서 해석하려든다. 자아가 붕괴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
모르는 것이 무섭다. 모른다는 사실이 무섭다. 처음가본 산을 지도와 길 없이 내려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실제로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땐 그 순간을 나름 즐기며 돌아다녔는데 왜 나는 나 자신의 조난을 즐기지 못하는가. 반드시 모든 길을 알아야만 발을 내딛는가. 무지가 주는 배움의 즐거움보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음에 느끼는 공포가 압도적이다. 어떻게든 사람 사는 곳에 도달함을 알았던 그 등산로처럼 결국 나라는 인간에게 닿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나도 모르는 내가 나올까 두려운걸까. 내가 나로써 명확히 정의되지 못한다면. 나도 나의 무의식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나는 뭘 믿고 선택을 하고 실행하는가. 나는 왜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을까 두려운 것인가. 그런 경험이 너무 많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도 나일 수 없을만큼 많은 시간을 연기해온 탓일까.
가끔 내가 말을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내가 나 스스로를 이상하다 여긴다. 자연스럽지 못한 자연스러움을 연기하고 그러지 않아도 되는 어색함까지 드러나게 된다. 나는 소심한 것인가 사교에 능숙해보이고 싶은 욕심에 그런 것인가. 그렇지 않고 자연스러울 때도 많거늘. 그런 때는 도대체 어떤 때란 말인가. 나는 진정으로 홀로일 수 있는 사람인가. 사실 그 누구보다 사람을 타는 것은 아닌가.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 속에 다른 이들이 느낄 것을 염려하고 있진 않는가. 아니라는 말에 아쉬움이 담겨있진 않은가. 거짓된 나를 너무도 연기한 탓에 그렇지 않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모르는 사람이 서 있다. 거울 앞에 나도 모르던 내가 서 있다. 누구냐고 묻지만 그도 똑같이 나에게 묻는다. 영원히 할 수 없을 대답만 기다린다. 나는 나를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른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일단 움직이고 하고 있던 모습을 거울 속으로 관찰할 수 밖에. 그렇다면 그것은 필히 행동에 이은 후속 관찰과 분석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 나를 던지고 그 순간 느껴지던 감정이란 출력물을 통해 패턴을 파악한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입이 늘 진실을 말하겠는가. 해보면 늘 처음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이 변동성을 만든다. 써내려간 가설로 나를 쌓지 말고 이미 얻어낸 사실들로 나를 구성해 나가리라. 그것은 진실된 부분으로부터 뽑아낸 직물이며 시간의 변화 속에서도 근본이란 의미있는 족적을 남길 수 있다.
손을 비빈다. 불을 피우고자 손을 비빈다. 문명의 축복을 두고 처음으로 돌아가 손을 비빈다. 그렇게 시작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인지하고 세상에 내던지던 순간부터 나는 어떤 행동을 했었는가. 나라는 알고리즘의 계산을 끊임없이 찾는다. 그래야 편하다. 그래야 내가 나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알아야 나도 나를 믿을 수 있다.
나를 찾아간다는 것은 아무도 없는 섬 속 등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어떤 것도 내게 남지 않아 즐길 거리가 나를 뜯어놓는 것 밖에 남지 않게 만들어 그것에 집중하게 하는 것.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창을 열게 하는 것. 그것은 흑백의 폭풍우 치는 바다를 주위에 두르고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끊임없이 집중하는 것. 그러지 않으면 불안이 늘 베개와 천장 사이에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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