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교향곡

불가능해서 완성하지 못했음을

by 노예올빼미

-


엔딩, 그 끝에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질문들의 해답이 기다리고 있다. 아니, 대개 그런 편이다. 복선을 회수하고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던 것들을 모아 끝맺음을 한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아니면 어떤 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든 분명히 해소되지 못한 궁금증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완성되지 못한 것에 완성을 향한 가려움을 느낀다.


무엇도 정해지지 않은 결론과 함께 사라진 이야기. 우리는 다시 시작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늘 그 사이에서 기다린다. 게임 중에도 의도적인 불친절이 숨은 뒷 이야기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토론하게 만드는 부류가 있다. 오히려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음이 도착지 없는 여정을 만들어내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미지의 정보에 이끌린다. 호기심은 진화의 원동력이자 학문의 시작이었고 새로운 것을 위해 기존의 원리를 이해하고 파악하며 인류가 똑똑해지는 결과를 얻었다. 그만큼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그러지 못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더 알고 싶어진다. 다 알아야 속이 후련하고 불안함도 가라 앉는다. 새로운 곳에 가서 노출되는 미지의 것들, 그리고 처음보는 이들. 어떤 것도 파악이 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스트레스 받는다. 은연 중의 두려움은 잃은 것이 있단 것과 사회생활이란 단어에서 오는 압박감이며 어떤 정보도 없단 것은 내 행동의 최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느끼는 어색함이나 그런 불편함이 올까봐 자연스러운 척 노력한다. 우리는 그런 불편한 위화감을 싫어한다.


사회적 동물이 된 이상 사회적인 상황, 사교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본능적으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무리에 섞이지 못한다는 것은 과거엔 죽음과도 같았기에 법을 떠나 나름의 도덕을 지키는게 주류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현대에 나타나는 사회의 주류를 따르는 유행문화와 그 대화 주제에 끼기 위해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아마 이의 흔적들일 것이다. 사회적 안락사는 그렇게도 두려운 것이다.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동네에서도 고독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인간에겐 물리적 거리도 중요하다만 사회적 거리가 훨씬 중요하단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렇기에 사람를 볼 때 본능적으로 탐구하고 분석한다. 통찰력이 있는 이들을 높게 치는 이유는 별다른 대화 없이도 상대를 간파할 수 있음이 대단한 것이며 처세술에 능한 사람은 그런 이들을 유형별로 적절한 대응을 통해 0에서 플러스의 이득 관계를 이끌어내는 이들이다. 사회적 능력은 사실 그 어떤 곳에서도 의미가 있는 가장 강력한 능력 중 하나이며 붙임성은 그 자체만으로 대부분의 난이도를 크게 낮춰준다. 결국 사람은 사람과 거래하며 살아가기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아는 이에게, 인사를 나눈 이와 가깝게 서게 되는 것이다.


다만 사회생활을 넘어서 사람이 누군가를 볼 때 이끌리게 되는 부분은 미지의 요소가 가득한 사람이다. 가끔은 어려운 사람이 더 많은 관찰을 요구하고 관심을 요구하고 그와 더불어 알아감에 있어 난이도가 있는 이들이 매력적이다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원인과 결과가 뒤집어져 모르는 것이 많으니까 알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이 사람이 매력적이라서 알고 싶어진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만난 이들과의 대화가 가장 재밌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친구와는 할 얘기가 없단 것이 이런 것이다.


-


어떤 일이든 끝맺음이 확실치 않았던 일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다. 해소되지 못한 것이 남아 있기에 우리는 밖으로 온전히 꺼내지 못하고 쌓여 있게 된다. 미완성의 완성 욕구는 단순히 궁금증만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늘 나 혼자만의 결정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기에 가끔은 내 의도와 다르게 너무 일찍 끝나기도 하는 것이다. 불완전함에 슬픔을 느낄새도 없이 지나가버린 탓에 해결되지 못한 숙제만 남게 된다. 때론 그것이 집착이 되고 삶 전반에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가끔씩 이것을 반드시 완성을 시키고자 해야하는지. 무언가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해소를 반드시 해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곤 한다. 늘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순 없다. 때로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고 앎으로 인한 피해도 늘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비밀이었던 것이 무방비하게 돌아다닌다고 쉽사리 취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편견이 없다고 자부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영향을 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상대를 대하거나 어떤 일에 임할 때 평소와 다른 느낌을 주게 된다면 나는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사실을 전하고 듣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순간의 쾌락은 말 그대로 근시안적인 욕구일 뿐이다.


-


내 삶의 미완성, 어렸을 적 급히 접어두었던 꿈들, 나름의 재미를 가지고 임했던 것들, 어렵사리 시도했던 첫 발자국, 얼떨결에 다시 시작하게 된 마음과 끝없는 두려움. 마침내 해소되었을 때 찾아오는 허무함과 지루함. 나도 참 단순하고 보편적인 인간이었구나 하는 깨달음과 끊임없은 되풀이. 나의 진정된 무의식을 깨닫지 못한 채 내려 놓은 것들. 그렇기에 조용히 식어버린 것들. 그래서 늘 궁금했다. 그 진실들을 아주아주 뒤늦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깨닫게 됨으로써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체념하게 되는 것. 나는 아주 보편적인 사람이구나 자각하게 되는 것.


-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