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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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뇌는 뇌의 뒷쪽 아래 공간에 작게 자리잡고 있다. 뇌 전체 부피의 10% 그리고 뇌 전체 뉴런의 80%를 가지고 있다. 그런 소뇌가 손상받는다고 우리가 의식적으로 사망하진 않는다. 소뇌는 연습으로 단련되는 모든 것들에 관여하며 감정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할뿐 우리가 살아있음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대뇌는 감각과 그에 따른 정보 처리에 기여한다. 대뇌가 감정에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감정의 조절 또한 연습으로 단련되는 것이기에 소뇌의 영역이며 잘 훈련된 어른이 어린이보다 감정 조절이 뛰어나며 알코올로 인해 약해진 소뇌로 인해 감정 조절도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깃드는 대뇌와 감정을 관장하는 소뇌는 서로 별개다. 대뇌는 피드백, 소뇌는 피드 포워드 방식으로 신호 교환이 이루어지고 동일한 뉴런 수에서도 복잡성의 극명한 차이가 이뤄진다. 그렇다면 의식과 감정은 서로 관련이 없단 것인가.
감정은 이성적 판단의 재빠른 도구로 비춰진다고 한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두고 가졌던 감정이 그 즉시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 하는 반사적 작용이란 것이다. 누군가가 살아오며 받았던 여러 불쾌한 경험들이 쌓아온 결과란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여기서 오는 느낌을 직감이라고 하는 것이며 쎄한 느낌이 들면 피하라는 조언이 생겨난 것이다.
이쯤되면 감정이란 것이 인간과 의식에 깃드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계되고 연습되어온 도구이며 또한 학습으로 단련되고 길러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의 특별함은 감정보단 그 감정에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현실에 일어난 현상에 부정하며 이유를 묻고 원인을 탐구하는 것이 인간 아니겠는가. 현실을 부정하기에 더 나은 것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론 현재 상황에 순응하기보단 부정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종족적 특성이 아닐까.
즉 소뇌와 같이 가는 대뇌라는 느낌보단 소뇌까지도 자신이라기보단 인체의 장기로 작용하고 자신 대뇌를 제외한 모든 것을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직관적으로 작동하는 소뇌에서 오는 감정에 때론 물음표를 던질 수 밖에 없고 자기 자신이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나 자신이지만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소뇌처럼 피드 포워딩 형식으로 작동하는 컴퓨터의 CPU와 GPU는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 그것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은 의식이란 것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고도화된 단련능력과 무의식적 반사를 통해 아주 잘 훈련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의식없이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 생겨날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모든 운동, 연습 등을 통해 소뇌에 기록한다. 별 다른 의식적 행동없이 딴 생각을 하며 행동할 수 있게 되는 운전, 글쓰기, 수영, 자전거 등이 모두 소뇌가 관여한다. 그렇기에 잘하려면 말 그대로 연습의 반복이 중요하며 이 기억은 대칭성을 가지진 않기에 반대도 동일하게 연습해야하며 아무리 천부적 재능을 지녔더라도 연습은 필수불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감정에 비해 그에 대한 해설이 미숙한 경우가 있다. 말 그대로 그 사람은 그런 연습을 하지 못했거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깨우침과 연습이다. 스스로 인지하고 바뀌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짐으로는 모자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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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날이 돌아오고 있다. 나는 여태껏 현실을 부정했는가 또는 순응했는가. 생각하는 것이 너무도 귀찮아져 버렸다. 평소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단 몇십분에 모든 생각을 쏟아붙는다. 그 외의 시간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순응인가 부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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