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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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함. 우리가 담겨져 있는 그릇 중 가장 큰 것. 영원과 같은 시간과 찰나에 가까운 삶. 우리는 왜 우주를 동경했는가.
이해의 갈망은 곧 질문의 이유였고 무지는 두려움이며 탐구는 굶주린 배를 채우는 행위이다. 마음 깊이 우리는 늘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길바닥의 개미를 지켜보는 어린아이부터 창밖의 풍경에 하염없이 참견하는 노인들까지.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가장 먼저 물어가며 찾아나간다. 궁금함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원동력 중 하나이며 그렇게 시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으며 지나왔다. 끝을 알 수 없을 인류의 역사 한가운데 하필 지금 이 시간에 태어나 의식을 가지고 삶을 체험하는 우리여, 우리는 무엇에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가.
처음으로 내가 마주한 그늘은 나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더듬으며 나아가야 했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란 그 순간. 나를 인지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거울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 사춘기이다. 부모를 향한 반항따위가 아니라.
내가 나를 보는 것은 너무 적나라하고 때론 잔인해서 괴로울지경이었다. 그렇기에 많이 울었고 많이 실수했고 많이 고민했다. 나 자신을 끝없이 비관하고 동시에 뭐든지 닥치는대로 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중학생 시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분명히 성인이 되고서도 끝없이 나아갔다. 덜 울고 덜 실수할 뿐 고민은 줄지 않았다. 나를 비관함에는 저 우주처럼 끝이 없는 것 같았고 유독 나 자신에게만 엄격해졌다.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나니까.
나를 그대로 이해하기엔 나 자신도 내가 아닌 부분이 너무도 많았고 그 뒤로 나는 내가 아닌 나를 보고 내가 보는 세상을 이해하려 하였다. 나의 모습을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이란 거푸집으로 유추하였다. 나를 담은 그릇이 나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 여겼고 그건 꽤나 적절한 조치였다. 그래서 조금씩 넓은 세상을 바라보았다. 마치 우물을 하나씩 뛰어오르는 것처럼. 그럼에도 늘 우물 안이었다.
그래서 우주를 올려다 본 시기가 있는 것 같다. 가장 바깥의 지점에서 바라보고 싶고 그러나 닿을 순 없는 그곳을 꿈꾸며. 마치 우주의 기원을 알면 이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은 그런 기분. 쿠퍼처럼 중력 방정식을 풀면 만물을 깨달을 것 같은 그런 마음. 진리가 있을 저 하늘 너머. 그렇기에 동경했다.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겠지만.
행선지를 모른 채로 버스에 오르진 않는 것처럼 우리를 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어딜 향해 나아가는지 몹시 궁금해한다. 집단과 사회, 국가까지. 나를 바꾸기 힘들 것 같다면 환경이라도 바꾸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존재한다. 사회란 바다 안에서 한없이 작은 나란 존재는 아무리 물장구를 쳐도 파도가 일거나 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조류의 방향을 알고자 헤엄친다.
우주는 언젠가 멸망한다. 원자단위로 찢어지거나 모든 것이 차갑게 식거나 다시 압축하여 하나의 점이 되던가. 영원은 없다. 태양조차도 수명이 존재하며 주계열성 중엔 수명이 긴 편도 아니다. 다만 인간에겐 너무도 긴 시간일뿐. 지구는 어떨까. 지구는 과연 얼마의 기간동안 유효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내가 돌아다니는 이 골목의 풍경, 옆집의 강아지, 모든 것이 순간이다.
단 몇년 전의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 흔적을 찾아보고서야 실루엣정도만 떠올려본다. 그럼에도 기억의 파편이 다시 맞춰지지 않는다. 그렇게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사라진다. 농담처럼 내게 한 옛 이야기에 거짓된 웃음을 지으며 마음 속 기록 보관소를 끝없이 뒤진다. 기억이 죽음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애도를 한다. 나의 순간들에게. 더이상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것들에게. 얼굴도 모르는 그대들에게 향을 피워 올린다. 아무에게도 닿지 않을 연기가 다시 내 코를 스친다. 나는 나를 너무도 모른다. 내가 나를 애도할수도 없게 될 때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럼에도 저 하늘의 우주는 다름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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