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사월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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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이다. 거짓을 농담처럼 주고 받는다. 때론 진실이란 숲 사이에 거짓을 섞어 넣으면 그럴싸하듯이 진실을 거짓 속에 섞어 전달하기도 하는 그런 날이다. 그럴듯한 농담과 장난. 그 속에 벚꽃이 피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포근하면서 때론 공허해지는 시기. 그 다채로운 계절의 초입. 향기가 있다.


3년 전 오늘의 같은 제목의 글. 한없이 어렸던 소년은 새로운 순간의 길목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여리고 약하며 어리석었다. 그때의 나와 비슷한 언저리의 감정을 잠시 꺼내어보고 내가 살아있음을 잠시 확인한 뒤 생각에 잠겨본다. 봄바람의 기운에 누워 가려워진 코 끝을 훔친다.


늘 순간순간의 마음을 간직할 순 없겠지만 유독 기억나는 시기가 있는 법이다. 한없이 배워야함에도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실수를 범하고 누군가에겐 상처을 주기도 하며 나 자신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된 방어를 행하기도 한다. 선택의 미룸은 어쩌면 책임의 전가였던걸까. 침묵은 때론 또다른 공격이었을까. 입장의 고수는 아둔한 고집이었을까. 생각해보니 늘 그렇다. 늘 그랬다. 변화는 늘 있는듯 없었다. 있어도 없었고 없다가도 생겨났다. 천성은 바꿀 수 없다고 하던가.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부터 늘 그런 모습은 남아 있던 것 같다. 뿌리를 찾아내 뽑을 수 없을 무언가가 있다. 손으로 잡히는 흙보다 더 깊숙한 어딘가. 피부 아래서부터 혈관을 내리며 자라난 지독한 암세포와 같은 것들. 후회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 하겠지만 내가 나를 두고 스스로 평가한다면 좋은 점수를 줄 수 없게 되는 주요인이 될 것이다.


마치 거짓말같다.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에 이르렀단 사실이. 마치 오지 않을 성인의 생일을 기다리는 중학생의 마음으로. 여전히 정신은 어지러운 중학생같기도 하고.


잠시 생각이 필요하다. 어둠이 내리는 별빛무리 그 아래에서 검은 비를 맞으며 초록의 생각에 잠기고 싶다. 이제는 내 마음 속 생각에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다. 고장난 카메라처럼 나의 생각은 계속 흐릿한 상을 기록한다. 흐릿하다. 흐린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 피로해진 홍채와 지쳐버린 몸뚱아리. 운동을 하던 그 시기는 어디로 갔는가. 3년 전의 내 몸의 모습은 어땠을까. 나는 건강해졌는가. 아니면 세월 그대로 늙어가고 있는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초연함이 사실 불안함의 위장막이라면. 나는 그런 흔들리는 불꽃이 되고 있는 것인가. 나를 향한 의심도 커져간다.


늘 봄이다. 그런 의심과 생각. 내 몸 안에 암은 그런 따스함을 먹고 자란다. 죽음보다 더 지독한 무언가가 되기도 하며 가끔은 공허함이 되기도 한다.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은 공허가 되어 하나 둘 끌어당긴다.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블랙홀. 관측하기 힘들만큼 천천히 빨아들인다. 죽음이 다가올때까지 이러지 않을까.


내가 나를 죽도록 미워하던 시기를 생각한다. 사소하게라도 내가 나를 증오하던 시기를 생각한다. 그것은 따뜻한 날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화창하고 따뜻하던 그 순간들. 그 순간들은 늘 그랬다. 어려운 문제를 하루종일 잡고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나와의 직면을 끝내지 못하니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어둠에 뉘여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별빛이 쏟아지던 그 날 밤처럼.


평가절하 당하고 싶다. 지금보다 더 별로인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다. 왜냐면 그게 사실이니까. 고작 이거뿐인 삶도 꽤나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소시민적인 삶은 작은 책임만큼의 고민을 가지게 된다. 그 마음이 닿는 곳에 가서 멈춰서서 나의 작은 것들을 품으며 사는 것도 행복아닐까. 그냥 그저그런. 그럴싸한 거짓보다 벌거벗은 진실이 더 편하긴 하다.


어제는 검은 비가 내렸다. 하늘이 같이 울어줌에 쓸어내려간 많은 것들 사이에 나와 몇가지 것들이 덩그러니 서 있다. 나도 쓸려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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