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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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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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웃음엔 슬픔과 고통이 숨어있다. 어쩌면 성공이란 곳까지 다가가기 위해서는 악마와의 거래를 해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이고 자식이고 뭐든 내팽겨쳐야 할만큼.
키쿠오는 야쿠자의 자식이다. 흰눈이 내리던 날 아버지를 여의고 원래부터 재능이 있던 가부키의 삶으로 뛰어든다. 지울 수 없는 야쿠자 집안이라는 이름표처럼 등에 새겨진 문신. 그 위에 끝없이 덧그려지고 지워지는 가부키 화장들. 키쿠오는 그 가부키 화장을 문신처럼 새겨나가던 것이었다.
똑똑히 보라던 친아버지의 말처럼 영원히 복수를 위해 살아가려던 키쿠오는 그 증오와 분노, 투지를 스승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킨다. 스승은 슌스케 대신 키쿠오를 들일 정도로 위하는듯 하였지만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키쿠오는 처음부터 다 슌스케를 자극하기 위함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통찰력으로 재능을 엿보던 아버지가 5일이 채 안남은 공연을 앞두고 준비도 제대로 못한 아들을 올리는 것은 공개처형이나 다름없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키쿠오는 독기로 해내고 만다. 도망치듯 사라진 슌스케를 버티지 못한 것이라 독하게 대하던 그의 아버지는 바로 옆에 키쿠오를 두고도 각혈을 해가며 슌스케를 찾는다.
키쿠오는 악마와 거래를 하였다고 농담을 할정도로 야망이 큰 사람이다. 슌스케를 위하는듯 하였지만 핏줄이 더 중요하단 말에 주먹이 나갈 정도였다. 그럼에도 결국 키쿠오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가족도 없고 늘 곁에 있으이라 믿었던 하루에는 슌스케와 도망갔으며 유일한 아군이었던 스승은 죽음과 동시에 믿음이 헛됨이었음을 깨닫는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에 혼자였다.
어렸을 적 만키쿠의 공연을 보며 괴물이라 말하고 그와 동시에 보았던 환상. 그 환상을 대역으로 오마츠를 해내며 보고만다. 키쿠오는 그렇게 괴물이 되어감을 암시한다. 끝내 마지막에 그렇게 쫓던 그 환상을 다시 보며 아름답다고 말한 뒤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키쿠오의 모습은 어두워진 관객석 너머 홀로 선 가부키 배우의 형태로 가장 외롭고 슬퍼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목소리는 배우가 아닌 키쿠오 자체의 목소리였다.
보는 내내 드라이브 마이 카가 생각나는 영화였다. 극 중의 극이 등장하고 주요인물들이 배우가 되어 연기한다. 그렇게 연기하는 내용들은 어느정도 캐릭터의 당시 심리나 상황을 대변하고 그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준다. 다만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에 걸맞게 멀고도 먼 관객석의 시점에서 비춰주며 그 내부의 연기 자체엔 큰 비중이 없었으나 국보의 경우 클로즈업을 적극 활용하며 입을 다물기 힘들 정도의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이 영화는 초중반부 키쿠오의 성인시절 배우인 요시자와 료가 나타나며 급격히 깊어진다. 정신나간 수준의 연기력으로 영화 전체를 견인해나가며 영화관에서 말도 안되는 수준의 몰입감을 형성한다. 감히 배우 개인을 이리 극찬하는가란 생각이 들 수 있겠으나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시나리오의 짜임새가 모자랐다던가 하는 아쉬움도 없지만 그럼에도 첫 오마츠 공연씬과 후반부 슌스케와 최후의 듀오 공연 때 배우들의 열연은 정말 엄청나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그 캐릭터와 정말 잘 어울리는 깊고도 텅빈 공허한 분위기는 이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이리라.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라기보단 거기서 오는 슬픔 고통에 대한 체험으로 예술의 어느 경지에 이르기 위한 개인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영화다. 본투비블루나 위플래쉬처럼 그 성공이 반드시 해피엔딩은 아닐 수 있단 경우를 보여주며 핏줄에 의지 할 수 없이 오히려 짐만 되는 그 상황에 오로지 재능 단 하나로 모두를 씹어먹으며 성장하는 서사는 간혹 주인공을 압도적 먼치킨 재능충으로 만들어 이입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면의 굉장한 슬픔과 고뇌를 비추며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장치를 통해 관객들의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매우 적절히 설계된 다크라이드 형식의 탈 것처럼.
그렇다고 내가 우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그 연출에서 다가오는 극적인 변화를 강하게 실어주며 충격을 주는, 향으로 감정을 우려내는 타 영화들에 비해 굉장히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은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럼에도 이 영화에 최고점을 주고자 한 이유는 아직도 요시자와 료의 연기를 본 충격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얼굴이 가진 매력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만키쿠의 말처럼. 그 얼굴이 아니라 표현과 연출만으로 이 영화의 가치는 내게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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