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아버지
제가 아주 어릴 때와 지금 사계절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라져서 사계절을 대표하는 3월 7월 9월 12월 같은 달은 더 이상 해당되는 계절들의 색깔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꽃은 꽤나 늦게 피고 여름은 서서히 오려나 했더니 생각보다 빠르게 오고, 가을은 거의 없다시피 지나가며 겨울은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길어졌죠.
그중 3월은 제게 봄을 뜻합니다. 모든 것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계절. 그리고 제가 태어난 계절이기도 합니다.
26년 전 3월 7일 아침, 어느 병원에서 굉장히 우렁찬 소리와 함께 어떤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아이는 눈물이 참 많았고, 낯을 가리며, 밤에 혼자 잠이 드는 것과, 어두운 곳을 무서워했어요. 위장이 약해서 밥을 먹으면 항상 게워냈고, 그 아이의 아버지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키도 커져서 스스로 꿈을 꾸며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점점 그때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가면서 참 많은 것들이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20대 후반이 된 지금 아직 저는 겁이 너무나 많습니다. 퍽하면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 앞에서는 가장 눈물이 많은 아이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어떠한 할머님이 친구들과 함께 파스타를 만드셨는데, 자신의 아기도 좋아할 것 같다며 집으로 챙겨가시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할머님의 아기는 환갑이셨고, 정말 부모님 눈에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이처럼 보이는구나 싶었습니다.
아직도 제 눈에는 아버지가 굉장히 커 보입니다. 꽤나 많은 것들을 배우며 자라고, 또 밖에서는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지만 아버지에게는 늘 배울 것들 투성이입니다. 제가 몰랐던 것들은 아버지가 익숙하게 아는 것이고, 제가 못하는 것들은 아버지가 잘하시는 것. 그것은 제가 아무리 나이가 들고, 여러 것들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양관식이라는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헌신하고 사랑을 듬뿍 주며 마치 현대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아버지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자랑으로 말하자면, 저희 아버지는 제 친구들도 인정하는 현실판 양관식이십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의 무뚝뚝함을 더한 양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거나 공부를 잘하지 못할 때에 아버지께서는 따로 혼을 내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매번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시험기간에 제가 했던 노력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고, 후회 없이 열심히 했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제가 의기소침해지지 않게 다독여주셨습니다. 결과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은 제 마음속에 깊이 남아서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언니와 저는 30살에 더 가까운 딸들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화이트데이나 크리스마스에 자신이 직접 포장한 선물을 전해주고는 하십니다. 어릴 때에는 주말마다 언니와 제 손을 잡고 경복궁을 놀러 가거나 조조영화를 보러 가주셨고 딸들에게 꿈이 생기거나 진학하고 싶은 학교가 있으면 꼭 함께 가주시기도 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저는 프리랜서라 주 5일 출근도 없고 주말도 없지만) 금 같은 주말에 외출을 하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며 참으로 감사하고 더욱더 소중한 기억이 되어버렸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자라면서 아버지의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나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사람. 내가 나아가는 길을 앞서서 걱정하지 않고 뒤에서 묵묵하게 믿음으로 나를 밀어주는 사람. 받는 것을 미안해하고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점점 작아지는 사람이 아버지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랐는데, 그때에 들었던 짜증이 이제는 후회가 되어버려서 과거의 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지, 최선을 다해서 효도하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여유를 이루어드리지는 못하지만 제가 열심히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하며, 저는 제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며 그렇게 아버지의 영원한 아기를 맡고 있습니다.
2년 전에 아버지와 식사를 하던 도중,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빠는 기연이가 하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행복한 삶을 살고 후회 없이 살아. 기연이가 열심히 하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힘들면 잠깐 쉬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 라고요. 당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이 살짝 고였지만, 울면 아버지가 속상해할 것이 분명하여 꾹 참았습니다.
또한 그 시기에 아버지는 어느 날 저를 부르시면서 조심스럽게 책 한 권을 건네셨습니다. 법정스님의 <스스로 행복하라>였습니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성경말씀보다 불교 말씀을 더 좋아하는 저를 이해해 주는 마음과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책을 내어주시며 ‘요즘 기연이가 힘들어 보여서 기연이가 좋아하는 스님 책 사봤어. 쉬면서 읽어봐’라고 말해주셨습니다.
언니와 저는 둘 다 예체능을 전공했고 언니는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아직도 흔들거리는 인생을 살고 있는 딸을 보며 불안함을 표출할 법도 한데 아버지는 아직까지 저를 믿어주시고 저를 자랑스럽게 여겨주십니다. 참 복 받았죠.
저희 가족은 매우 끈끈하게 서로를 잡아주고 있습니다. 사랑이 많은 집에 태어나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제가 되었고, 표현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많이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한함이 있는 삶이라, 언제 이 끈끈함이 느슨해질지 모르겠지만 되도록 늦게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아버지에게 드릴 사랑이 많이 남아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