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모든 것이 잠드는 시간

나의 사람들에게

by 기연

겨울입니다. 날이 너무나 추워지고 더웠던 여름이 기다려지는 계절이 왔습니다.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하늘이 더욱 춥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열심히 달려왔던 해를 보내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아픈 것들이 너무나 많아집니다. 결국 잊혀갈 것들이 늘어만 갑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느긋함을 배웠습니다. 초조함을 지우지 못한 채로 말이죠. 달리지 않아도 될 이유도 배웠습니다. 낮은 우울감을 지닌 채로요. 어쨌든 살아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를 모두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소중한 마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해가 지나갈 때마다 1년 후에 나에게, 그리고 유서를 함께 씁니다. 20대 초반부터 했던 일입니다. 지속될 미래에 있을 ‘나’와 그렇지 않았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함께 쓰는 이유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을지 그렇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을 우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서를 쓰는 특별한 이유는 잊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울보다는 행복과 감사와 행운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 사람과의 인연을 멀리하고 살아왔습니다. 아무것도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주는 것과 받는 것의 행복과 만족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사람을 어려워하긴 하지만 나의 사람들 안에 있는 편안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습니다. 신기하게도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떤 곳에 있던, 어떠한 일을 하던,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던 저의 사람들은 제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불안정한 하루들을 보내고 불안한 마음을 지닐 때마다 홀로 동굴을 파서 들어가는 저를 묵묵히 기다려줍니다. 생각을 끝내고 동굴을 나오면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말해주며 아무렇지 않게 저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어떠한 인연을 만들 때에는 많은 조심스러움이 따라옵니다. 감추고 싶은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감출 것들이 저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게도 남은 인연들은 저의 모든 것들을 안아줍니다. 마음 편히 아플 수도 있고, 우울해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나게 웃을 수도 있습니다. 워낙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자주 모습을 비추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저를 편하게 대해줍니다. 서운해하거나 우리의 인연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믿기 때문일까요.


20대 초반까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겪으면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포기를 하고 사람과의 단절을 택했었는데 어떤 마음 넓은 이들이 저를 찾아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주었습니다. 덕분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정이 메말라버려서 어떠한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사람들 덕분에 듣는 법과 이해하는 법과 사랑을 주고 또 받는 법을 알았습니다.


받은 것보다 돌려주는 마음이 더 컸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으니 계속해서 그들의 곁에 머물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를 믿어주고 기다려준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 마음이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나의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좋은 사람이란 편안한 사람이기에, 그들에게 제가 편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적인 사랑은 너무나 드물게 찾아옵니다. 그 사랑의 소중함이 저를 살게 합니다. 그들에게는 끝없이 잊히고 싶지 않은 욕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이 저를 떠올렸을 때 좋은 기억과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잊고 싶지 않은 안부를 들었습니다.


나의 사람들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저에게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아껴왔던 모든 에너지를 그들에게 쏟지만 전혀 아깝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하는 저를 볼 때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을 내어주고 함께 걸어 나갑니다.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비틀거리고 휘청일 때마다 기다려주고 잡아주어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연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어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편안하고 잔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