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 그 사이 어딘가

길을 잃은 당신에게

by 기연

어느샌가 날이 추워졌습니다. 가을이 오긴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알록달록하게 물이 잔뜩 들었던 나뭇잎들은 하나둘씩 가지들과 이별을 합니다. 나무가 유난히 추워 보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눈이 오겠지요. 나뭇가지를 꾸며줄 눈이 온다면 조금은 덜 추워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나뭇잎들은 눈에 잠겨 기분 좋게 바스락대는 소리 대신 축축하게 바닥에 붙어있을 테지만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순간은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집니다. 이상하게도 더워지는 것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은데, 추워지는 것은 익숙해짐이 따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찾아오니까요. 추워진다는 것은 달력의 월이 두 자리로 바뀐다는 것. 그리고 12로 다가가는 길은 곧 1을 맞이한다는 뜻이겠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계절이 3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나의 기억은 어딘가에 멈춰있는데, 시간은 자꾸 가기만 합니다.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스며드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빨리 가는 시간을 좇기만 하다가 두리번거리니 처음 보는 길이 나옵니다. 어딘가 무서운 기분이 듭니다. 무거운 공기가 감돕니다. 결국 우울이 또다시 덮쳐왔습니다.


최근에 가장 친한 언니를 만났습니다.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사이라, 꽤나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주 보게 되면 변화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제 눈에는 언니의 변화가 너무나 잘 보입니다. 마음이 아픈 변화입니다. 어떤 말을 해주어야 조금이라도 웃게 해 줄 수 있는지 고민을 하지만, 나와 너무 비슷한 사람이기에, 더욱더 조심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언니가 길을 잃었습니다.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는데, 길을 잃었습니다. 잡아둘 수 없는 이유는 언니가 계속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발목에 달린 무거운 짐을 버리지 못한 채로 계속 힘겨워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천천히 쉬었다가 가라고 말을 하지만, 언니는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쉬어야 보이는 것이 많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했지만, 쉬게 되면 불안함이 보인다고 합니다.


유독 연말에 길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마 나이가 드는 것, 점점 어른이 되는 것, 책임질 것이 계속해서 느는 것, 그럼에도 제자리인 것만 같은 나의 자리를 두려워하게 되어서 일까요.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길을 잃어도 괜찮아.'


두려움 없이 걷는 인생은 없습니다. 다들 아프고 힘드니까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틀린 길은 없기에, 짐이 무거우면 내려놓아도 되기에, 자유롭게 살아달라는 바람입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잃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잃기만 하는 인생은 없습니다. 우리는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 짊어질 수 있는 무게의 한계도 있을 것입니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을 것이고, 또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무게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춥니다.


놓치지 않으려 계속 잡고 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펼쳐보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있으신가요. 손을 펴서 바라보세요. 그것은 생각보다 나에게 별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잡고 있어야 했기에, 놓친 소중한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확언은 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인생은 저의 인생과 다르니까요. 모두가 각자의 인생이 있으니까요. 참견이 되지 않는 말들을 해주고 싶습니다. 괜찮다는 말이 짐이 될까 봐 괜찮다고, 괜찮으냐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던, 길을 잃어서 잠시 멈추어 방황을 하던, 모두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모두 필요한 일들이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대신 스스로를 잃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것들은 놓쳐도 자신은 놓으면 안 됩니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만 챙길 수 있다면 저는 제 자신을 챙기겠습니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나'와 '당신들'이 있으니, 꼭 저를 챙기고 행복해지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을 먼저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괜찮다는 말을 밥먹듯이 뱉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이 생각납니다. 울렁이는 눈물샘과 팽창하고 있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입꼬리를 올리는 당신이 보입니다.


나의 존재가 위로가 된다면 기꺼이 다가가 안아주겠습니다. 옆에 있어주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나의 곁에서 떠나지 말아 주세요. 행복함을 느끼고, 그 행복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쳐주세요.


슬프면 울어주세요.

화가 난다면 화를 내어주세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시고,

미운 마음이 든다면 용서하세요.


당신을 이해할 사람은 당신뿐이고, 당신을 자유롭게 미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당신뿐입니다. 그리고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도 당신밖에 없습니다. 필요한 책임만 지니며 자유롭게 쉬어도 되고, 걸어 나가도 됩니다. 손을 펴서 바라보세요. 손톱자국이 가득 나있는 손을 바라보세요. 나를 아프게 한 것들이 사실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러니 보듬어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부디, 아프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