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 잠기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무더웠던 날들이 가고, 이제야 조금씩 끈적이지 않는 밤을 보낸다. 시끄러웠던 매미의 울음소리는 잦아들고, 선선한 바람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올 때 우리는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가을은 곧 한 해가 끝이 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해를 거듭할수록 시간은 너무나 빨리 간다. 아무리 알차게 보내려고 해도 뒤돌아보면 후회되는 시간들이 있다. 20살 이후로 나이를 딱히 생각하고 살지는 않지만 가끔씩 훅 들어오는 나의 나이를 깨닫고 나의 현실을 바라보게 될 때에는 참 한없이 작아진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나는 돌고 돌아 끊임없는 회오리에 갇힌 듯이 계속 돌고 있다. 어디가 최종 목적지인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계속해서 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적당히 돈을 벌면서, 소중한 평온함을 즐기면서 그렇게 조용히 나의 시간을 적어가고 있다.
가끔은 헷갈린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잘 살고 있는 건지
어떤 것이 잘 사는 건지
이러한 굴레에 빠질 때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 우울함에 잠기기.’
물욕이나 성공욕 같은 욕심이 없어서 그저 하고 싶은 대로 건강한 행복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고 다닌다. 하지만 욕심이 없다는 말은 그저 욕심이 없다는 것. 부러움까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잘 부러워하고 질투도 잘한다. 모두가 나보다 빨리 잘되는 것 같고, 나보다 더 좋은 삶은 사는 것만 같고, 내가 그들보다 너무나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보이는 현실은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내 눈을 크게 벌린다. 그리고 보이는 것들은 나를 좌절하게 하고, 그동안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을 부정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돌고 있는 이 자리와 굴레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의 행복을 알고, 또 즐기고 있으니까.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고들 한다. 처음에는 몰랐다. 정말 가까이에 내 행복이 있는지, 내 주변에는 우울함과 자괴감 그리고 열등감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조금만 치우면 행복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힘이 많이 들고, 그것에 할애하는 시간도 나누어진다. 그렇기에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람보다 나의 시간은 더딜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낼수록 내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또한 나의 마음에도 아무런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미움의 싹은 없는 틈 사이로 들어와서 미운 꽃을 피운다.
우울함에 잠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인 일이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걱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과 같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같다. 느낌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울한 것은 나에게 다행인 것이다. 우울함이 다가오면 나는 두 팔을 벌려 힘껏 안아버린다. 그 우울도 나이기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 우울하다는 것이기에, 그것까지 안아주려 노력한다. 물론 힘들고 눈물이 나고 내가 싫어지는 과정을 거치지만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며 조금 더 나은 방향과 삶의 태도를 정하게 되는 순간 우울은 나를 칭찬해 주며 사라진다.
음악에 대한 슬럼프가 크게 왔던 적이 있었다. 공연 당일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오디션에서 탈락했다는 문자를 받았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연을 했지만, 울렁거리는 마음에 반응이 없는 공연은 나의 최악의 공연이 되었고, 그 일은 내가 음악을 계속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물음이 되었다. 물음보다는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울음을 참고 집으로 돌아와서 방에서 한참을 울었다. 함께 공연을 했던 세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펑펑 울었다. 음악을 10년 넘도록 하고 있지만 이토록 좌절스럽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처음이었기에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고, 극복을 해야 할 이유조차 찾지 못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울다가 아이패드에 있는 일기장을 켜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현재 나의 마음과 나를 달랠 수 있는 온갖 말들을 적어나갔다. 조금씩 마음은 안정을 찾았고, 결론은 ‘그냥 해보자.’였다.
마음을 글로 쓰는 순간 눈에 보이는 마음이 된다. 그리고 영원히 남는 마음이 된다. 기록을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우울에 잠겨있다가 나올 때 쓰는 방법이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또한 비슷하다. 글로 남겨야 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애정을 이 일에 담고 있는지에 대해 글로 남기면 길을 잃었을 때 어느 정도의 방법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우울한데 글까지 써야 돼? 내가 지금 힘들다니까!‘ 하며 쓰지 않았는데, 마음에서 마음으로 끝내는 감정보다 마음에서 글로 끝내는 감정이 훨씬 깔끔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귀찮고 힘들더라도 꼭 쓰려고 한다.
내가 타인이 볼 수 있는 글을 쓰게 된 후로 꽤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공연에서 음원으로 발매되지 않은 노래를 하는 것은 공기 중에 날아가 쉽게 휘발되고 잊힐 수도 있지만 책으로 쓰이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지우지 않는 이상 꼭 남는다. 그래서 보통 노래에는 아픈 마음을, 글로는 행복과 사랑의 마음을 담으려 하고 있다. (물론 아닌 글들과 노래들도 많다.)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둘 다 좋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일로 나의 마음을 뱉을 수 있고 남길 수 있다. 너무나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달고 살고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자주 나를 미워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중간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도 하며 살고 있다.
길게 돌아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길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돌아갈 가치가 있다. 그 길에 내가 사랑하고 잘하는 일이 있다면 더 많이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인생이 남보다 못해 보이거나, 나의 인생이 너무나 길고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에는 우울에 잠겨서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