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든 것들

아픔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미래를.

by 기연

사계절 중 가장 짧게 느껴지는 계절은 가을인 것 같습니다. 가장 기분 좋은 날씨. 어떠한 옷을 입을지 기대가 되는 계절. 높은 하늘을 마음껏 보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유스러운 계절. ‘한 해가 끝나기에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계절. 그 계절이 저에게는 가을입니다.


시간은 천천히 가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나간 것들은 잊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곳에 빠져 살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저에게 저의 과거는 가장 예뻤던 시기, 가장 생각이 많았던 시기,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던 시기, 가장 눈물이 많았던 시기, 그리고 가장 힘겨웠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찾아왔던 만남들과 이별들 사이에서 감정이라는 것을 정리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것들이 얽히고 꼬여서 특정 과거에 대한 기억은 흐려졌습니다. 그래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보다 저의 과거는 너무나 깊은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잊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행복을 더 크게 느끼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고 정말 소중한 기억들이니까요.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저는 저의 어린 시절 사진과 그 모습이 담긴 글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겁도 많고 눈물도 많았지만 웃음이 많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때 저의 모습을 따라 하고 싶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들을 달려왔기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주 봅니다. ’ 나도 순수하게 볼 수 있던 사람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아프고 행복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더 오래 남습니다. 행복은 쉽게 잊히지만 그 반대의 기억들은 당시에 너무 깊이 괴로워했기 때문인지 쉽게 잊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행복하고 좋았던 일들을 그냥 지나치고 끝내버렸다는 말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기억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기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슬픔과 행복, 그리고 그곳에서 온 나의 감정들을 잊고 싶지 않았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가 됩니다. 아픔을 잊고 싶지만 그 감정을 잊고 싶지는 않아서 아픔도 남깁니다.


좋은 과거와 나쁜 과거 모두 나의 모습입니다.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팠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올리면 아프지만 지금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들은 결국 다 지나간다.'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시간은 가고 있고, 저의 글은 쓰이고 있으며, 글은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끝이라는 것이 있고, 또 끝은 시작이 있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지만, 시작하는 것은 늘 어렵고 끝은 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하루는 늘 고되지만 한 달이 지나가는 것은 늘 아쉽습니다. 어쩌면 아쉽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감성에 젖은 생각이 듭니다.


정신적으로 괴로움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아쉽고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걸 이겨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더 나아진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행복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가져다 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낭만과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를 넓게 바라보며 새롭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내가 어디서 행복을 느끼는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원하고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을 저의 시간에 새기며 모든 것을 힘차게 시작하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마음이 틀어지게 되고, 흐려지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면 끝을 내고 새로운 것을 깨달아야 하겠지만, 끝이라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즐겨야겠습니다.


끝은 시작을 위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아쉬운 것이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아쉬운 마음은 지겨운 것과는 다르기에 어쩌면 설레는 마음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을 설레며 살고 싶습니다. 매일을 아쉬워하며 살고 싶습니다.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과정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잘 정리하면 좋은 교훈이 되기에, 모르는 척 지나가지 않고 그것을 잘 관찰하며 생각을 하다 보면 모든 것들이 좋게 보이는 과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사랑스러운 과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픈 기억들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미래를 맞이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