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그 사이 어딘가

새로운 마음과 멀어지는 익숙함

by 기연

어떠한 옷을 입어도 날씨와 맞지 않습니다. 익숙해지던 더위에 맞춰 옷을 입으면 어둑해진 시간에는 따뜻함이 간절해지고, 그렇다고 높아져 가는 하늘 아래에 맞춰 입으면 조금 더 가볍게 입어볼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여름과 가을, 그 사이 어딘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옷차림처럼 지금 저는 새로운 마음을 얻고 익숙함을 멀리 떠나보내는 길에 서있습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삶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들의 시간의 길이 맞아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홀로 걷던 그 길이 함께 걷는 길이 되는 순간 꽤나 많은 것들이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그 변화는 때로 불편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가라앉아있던 평지의 길에 계단이 생긴 것만 같은, 어딘가 모르게 들뜨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좋아하는 마음의 길이 맞아떨어졌을 때, 우리는 연인이 됩니다. 많은 고민을 거치고 두꺼운 용기와 확신을 가지게 된 순간 약간의 머뭇거림을 안은 채로 마음을 밖으로 뱉습니다. 뱉은 말은 상대에게로 달려가 상대의 마음 자물쇠를 확인하는 열쇠의 역할을 하게 되고, 그것이 짝을 이루기를 희망하며 기다립니다.


연인이 된다는 것, 서로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


양보와 배려, 그리고 그가 다치지 않게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피어납니다. 나로 인해 그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예쁘게 꽃을 피웁니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나로 인해, 나와 함께라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하지 못한 삶의 모양이라 이 모양을 최대한 아름답게 꾸며보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나의 모양이 어설프게 다른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저의 삶을 안아줍니다. 숨기고 싶었지만 숨기지 못할 것 같은 저의 아픔과 병을 보여줍니다. 그는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어깨를 내어줍니다. 자신과 함께라면 더 괜찮아질 거라고 제가 지고 있던 짐을 나누어 들어줍니다. 저도 그의 짐을 나누어 갖고 싶습니다. 인연과 연인이라는 것이 그런 걸까요.


나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내려고 억지로 그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했기에 숨기고 싶은 비밀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좋아함의 마음을 뱉기까지 많은 고민들이 스쳐갔습니다. 제가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닌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그대로의 저를 보여버렸습니다. 겁이 났지만 그는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불쌍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그는 저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러운 확신이 듭니다. 하지만 너무 들뜨고 싶지는 않습니다. 상처를 받기 싫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아마 그도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아함의 마음을 숨기는, 예전의 제가 했던 실수들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껏 표현하고 혹여나 상처를 받아도 단단한 믿음과 마음으로 부딪히고 싶습니다.


꽤나 오랫동안 홀로 있는 시간이었기에 아직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어색합니다. 기분 좋은 어색함이 듭니다. 간질거리는 마음이 밤새 저를 괴롭힙니다. 변화는 때로 새로운 저를 발견하게 해 줍니다. 잔잔하고 오랫동안 천천히 함께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걷는 길이 익숙해지고 어쩌면 지겨울 때가 와도 그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좋은 지겨움일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가 저에게 이러한 존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