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은 밤

내 모습은 더욱더 쓸쓸하게 보이네

by 기연

고된 하루가 끝난 후 바깥의 먼지들을 물로 씻어 보내고 가장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편한 곳. 침대로 올라가서 벽을 기대어 앉는다. 가장 편한 복장과 가장 편한 곳에 있지만 이상하게 어딘가 울렁거리고 고요함에 섞인 숨소리가 낯설게 느껴진다.


나에게는 여러 가지의 가면이 있다. 지인과 친구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가면, 심지어는 스스로에게도. 어릴 때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도대체 나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하며 스스로를 거짓된 사람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이가 조금씩 더 들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무엇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니. 나는 나로 인해서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나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나오는 날 것의 말들과 행동들이 혹시나 상대방에게 무례하거나 불편하게 다가갈까 봐 그 상대방에게 맞는 가면을 만들어 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눈치를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어떤 누구는 나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상처를 줄 것이 뻔하다. 나의 가면은 나의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를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인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 가면을 벗어버리면 나도 불편해질 것이 분명하다.


오랫동안 복잡하고 어려운 성격을 숨기며 입을 닫고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하고 그 반대가 불편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이유가 위에 적은 이유이고, 뿌리 깊은 이유는 여러 시간들이 쌓여서 본질을 잃어버렸다. 어찌 됐든 나는 지금이 편하고 전혀 불편하지 않다.


다만 내가 불편한 것은 나에게도 진실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하는 것.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것. 그리고 곧 모두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 나는 늘 이렇게 나를 속여왔다. 오늘 내가 지었던 표정들을 생각한다. 상처를 받았거나 불편했지만 웃어넘기고 나는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모두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던 나를. 그러했던 내가, 나는 불편하다.


언제쯤 진실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언제쯤 나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는 두려운 것일까. 내가 생각한 나보다 실제로의 내가 더 약하고 볼품없는 사람일까 봐 두려운 것일까. 마주 본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고요함안에서 들리는 나의 숨소리, 그리고 위아래 층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흔적 소리. 나는 나를 언제쯤 마주 볼 수 있을까.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용기가 생기는 사람이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을 최대한 멀리하는 사람이라 홀로 있을 때 조금 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는 한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솔직한 마음들을 꺼내 글을 적기 시작한다.


한때 나는 내가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의심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살고 싶다는 발버둥이었을까.


정이라는 건 사람에게 마약 같은 존재다. 정이라는 걸 받는 순간 그 사람은 혼자 못하는 것이 늘어난다. 정이라는 게 없어진 순간, 내게 정을 주었던 사람에게 외면을 받는 순간, 사람은 피폐해진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정이라는 것을 모르고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냥 정말 혼자인 삶을 살고 싶다. 그 걱정 때문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었을 때 대피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게 그럴 곳은 사라져 있었고, 그저 외로움만 남아있었다. 한참을 울었다.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를 바라본다. 그 과정은 죽고 싶게 만든다. 내 모든 것들을 다 들어내고 밑바닥을 바라보아야 하는 일. 그것은 고통이고 외면하고 싶고, 평생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오직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고통을 감내한다. 참으로 웃기다.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파와도, 늘 오던 자해의 충동을 겪고도 절대로 하지 않던 일인데, 고작 남들이 읽지도 않을 글 따위를 쓴다고 스스로를 바라보기로 했다.


나는 내가 감정이 있는 것이 싫었고, 사랑을 아는 사람인 것이 싫었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 싫었다. 상처를 받는 것이 익숙해지는 모습이 싫었고, 희망을 가진 채 또 사랑을 하는 내가 싫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홀로 있을 때 용기가 생긴다.

어둠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

싫은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용기.

그럼에도 살아있다는 기특함.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라는 불투명한 다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