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만은 분명히 행복하다
중학교 때였다. 집과 학교의 거리는 걸어서 약 35~40분 정도 되었다. 초등학교 때 할머니가 사셨던 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등본상 주소는 이사를 가기 전 주소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중학교가 있었음에도 조금 먼 중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당시 나는 등굣길에 서있는 선도부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너무나 싫어했어서 늘 7시에 등교를 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다녔을까 신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먼 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7시 등교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 일찍 일어나야 했다. (내 기억상 5시 20분 정도에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심지어 고등학교는 집에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렸었는데 그때에도 같은 이유로 3년 내내 7시 등교를 했었다.)
졸린 눈과 쌀쌀한 아침 공기가 만나면 절로 눈이 떠진다. 그렇기에 나의 등굣길은 늘 잠에서부터 달아나는 길이었다. 문제는 하굣길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인데, 하굣길은 늘 중간에 있는 중학교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을 꼭 마주치고 지나가야 했기에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집이 멀기도 하고 친구도 별로 없었기에 등하교를 모두 혼자 했었어서 이야기를 하며 갈 수도 없었다. 그저 최대한으로 피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로 가는 것이었다. 집과 학교는 옆동네이지만 둘 다 너무나 익숙한 동네였기에 큰길로만 나가면 어떻게든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학원을 가지 않는 날, 집으로 바로 가야 하는 날에는 골목골목을 돌고 돌아서 집으로 가고는 했다. 어리기도 했고, 그때에도 홀로 있는 것을 좋아했었기에 그 시간이 힘들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매번 다들 골목을 선택해서 늘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걸어 다니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순간의 일탈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 익숙하고 지겨운 매일매일에 새로움을 불어넣어 주는 것.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빠르게 가는 것보다 돌고 돌아 많은 것을 보는 길을 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빠르게, 좋은 길로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산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포기한 것에 가깝고, 다르게 말하면 이제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를 너무나 작게 만들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부터였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어느 정도의 연민을 가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굉장해 보였고 그에 비해 내 삶은 너무나 볼품없어 보였다. 이러한 마음은 열등감을 낳았고, 남들에게 보이는 삶에 집착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쓸모없는 것에 집착하며 계속 지쳐만 가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방향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나를 위해서 사는 삶을 향해 발버둥을 치고 싶었다.
다행히도 나는 아버지의 과정중심 교육 아래에서 자랐기에 과정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고, 과정을 다채롭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고, 노력할 힘도 있었기에 그 과정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시간이 헛되지 않게 스스로 만족하며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작은 목표들을 이루어가며, 때로는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가며 그렇게 천천히 나의 속도에 맞게 살고 있다. 중간중간 좌절하고, 나를 미워하고 다독이는 시간도 가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내가 바라던 삶과 현재의 삶은 너무나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나는 가고 있고,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현재를 살며 미래를 꿈꾸는 삶을, 어쩌면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삶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못하는 것은 없고, 되지 않는 것은 없다.
한계를 두는 삶이 아닌, 무한함을 지닌 삶을 사는 것.
결과가 아닌 과정에 삶을 녹이는 것.
이것이 내가 삶을 산책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