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왔습니다.
작년 1월,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쳐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지겹도록 익숙한 서울과 나의 작업실, 그리고 집에 계속 나의 몸을 두는 것은 나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아무도 나를 모르지만 나에게 편안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장소를 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 있으니까. 그렇게 제주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후 3월, 나의 생일 기념으로 제주로 도망을 갔다 왔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바다를 보고 바다 냄새를 맡고, 하늘을 보고 떠오르는 비행기와 내려오는 비행기만을 바라보는 날들을 가졌다. 당시에도 브런치 연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찾아보면 내가 제주에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자세하게 적혀있는 글이 있을 것이다.
작년 12월부터 감정의 요동침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 외부와 내부, 타인과 나의 안에서 많은 파도가 일렁였다. 너무 지쳤다.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매일 밤을 울었지만 눈물샘은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내려왔다. 작년 여행이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기에 이번 나의 생일에도 제주에 머물고 싶어서 이미 비행기표와 숙소까지 잡아놓은 상태였는데 도저히 나의 정신과 몸이 그때까지 온전한 상태로 버틸 자신이 없다는 어두운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1월에 비울 수 있는 날들을 최대한 끌어모아서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숙소까지 예약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여행 계획을 잡는 순간 그 기다림으로 인해 더욱 힘차게 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작년부터 시작한 이 여행을 <도망여행>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나는 이 도망여행을 계획한 순간부터 일부러 감정을 계속 쌓아두고 있었다. 그래야 가서 힘차게 괴로워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울어버리고, 그렇게 괴로워하는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시원한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여행을 가기 며칠 전부터 소위 말하는 ‘억까’를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정도의 억까는 참을 수 있었는데, 출발하기 바로 전날 작업을 하다가 컴퓨터가 터져버렸다. 파워가 나간 것이다. 온갖 짓을 다 해봐도 다시 켜지지 않았고, 수리 센터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당일 출장은 어렵다는 말밖에 듣지 못하였다. (당일 출장 가능이라고 해서 연락을 한 것이었는데….)
아무튼 1월에는 해야 할 작업량이 많아서 여행을 가기 전에 최대한 모든 걸 끝내놓고 싶었다. 그래서 정신력을 맥스로 끌어올려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녹음을 끝내자마자 파워가 터져버렸다. (아마 컴퓨터가 터지면서 당일 작업했던 것도 날아갔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저장을 생활화 하자.) 당일에 무조건 전달해야 마음 편히 여행을 갈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계획을 다 짜고 실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고 하나 때문에 작업실에서 장비를 챙겨 집에 처박혀 있던 노트북에 2~30기가 정도 되는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 일을 해야 했다. 어떻게든 해야 했기에, 머리를 최대한 굴려서 새로운 계획을 짜고 집으로 가서 실행을 했다. 약 4시간 만에 일을 모두 끝냈고,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수정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한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프로그램을 깔고 있을 때, 이 정도로 ‘억까’가 심한 날들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항공사 사이트와 숙소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전날에는 취소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제주로 오는 길은 생각보다 그렇게 험난하진 않았다. 다만 시내버스가 파업을 하고 있어서 그냥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갔다. 택시기사님의 안전하고 신속한 운전과 늘 빨리 도착하는 내 자신 덕분에 예상시간보다 공항에 훨씬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에 눈이 많이 온 다음날이었어서 혹여나 결항이 되진 않을까 했지만 다행히도 결항소식은 없었다.
매번 항공편을 예매할 때에는 가격위주로 봐서 거의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었는데 이번에 신기하게도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특가로 떠있었다. 바로 예매를 했고, 덕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에서 너무나 예쁜 노을을 볼 수 있었다.
7시가 넘어서 도착한 제주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먼저 가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두고 편의점으로 갔다. 이 숙소는 내가 학생 때부터 가족여행으로 자주 묵었던 숙소라서 주변 편의시설의 위치에 꽤나 익숙해져 있는 편이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편의점을 찾을 수 있었고, 오히려 집에 있는 것보다 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서 숙소로 돌아온 후 씻고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밥을 먹었다.
솔직히 제주에 도착한 순간부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혼자인 기분이 너무 좋았다.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 울었다. 진짜 소리 내어 운 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소리를 내어 울어보았다. 밥을 먹고 치우는 도중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울면서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했다. 사실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해서 잠깐씩 어이없는 웃음을 뱉기도 했지만 한참을 울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진 것 같았다.
감정의 요동침이 너무나 두려울 때가 있다. 나는 감정에 매우 예민한 편이라 타인과 감정을 쏟아가며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상처를 받을까 봐서가 아니라 그저 나의 감정이 파도를 치는 것이 너무나 싫기 때문이다. 어떠한 요동침도 느끼지 않고 평온하게 흘러가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온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이러한 세상의 이치는 세상이 친절하게 매번 알려주기에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감정의 요동침이 싫은 사람. 슬픔과 분노, 그리고 행복까지 과한 감정을 갖는 것이 힘든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눈물이 너무나 많은 울보라서 슬픔, 행복, 분노 모든 감정에 그와 어울리는 눈물이 난다. 바로 앞 문장은 그저 감성 있게 쓰고 싶어서 써본 문장이고, 쉽게 말하자면 그냥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운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울 때면 나의 가족들과 연인은 최대한의 배려로 나를 부담스럽지 않게 달래주고는 한다. 사실 내 주변에 나보다 눈물이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를 달래주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들도 분명 나 때문에 꽤나 큰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지금은 제주 2일 차이다. 맛있게 밥을 먹고, 카페에 와서 맛있는 더치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내일모레 다시 서울로 간다. 그리고 분명 끝이 나겠지만 그럴 것 같지 않은 작업과 컴퓨터 수리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제주로 도망을 온 이상 제주에 있을 때만큼은 일과 관련된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일 관련 연락도 보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오늘도 부디 평온하게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데 감사히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어디로든 떠나보길 바란다. 아니면 모든 걸 내려놓고 훌쩍 떠나는 것도 용기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