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흔적이 되고, 기억이 되는 것.
최근에 어떤 드라마를 보다가 어떤 대사를 보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기억에 의지해서 써보자면 ‘잃는다는 것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없어진다는 것은 있었다는 것이다,’와 같은 대사였던 것 같다. 이 대사를 듣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내가 너무 잃는 것에만 집중을 하느라 있었던 곳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구나’였다.
살면서 바뀌지 않는 것이 있을까. 내 품에 영원히 있을 것 같던 무언가는 필연히도 나를 떠나고, 나는 아무 힘도 없이 그것을 잃고 만다. 그렇게 공허함과 슬픔, 후회가 찾아온다. 잃는다는 것과 없어진다는 것은 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고, 그 빈 공간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동안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서 하나 둘 떠났을 때 잃었다는 마음에 당장 드는 공허함과 그리움으로 괴로워하기에 바빴다. 있었던 기억들의 단편과 가장 좋았던 기억들, 그리고 어느 정도 미화된 기억들이 타고 있는 괴로움에 기름을 붓기도 하며 끊임없이 괴로워만 했다. 나는 늘 무언가를 잃거나 누군가 나를 떠났을 때 무작정 슬퍼하고 후회하기에만 바빴었고, 떠나고 잃은, 그 이유를 찾고 싶었었다. 그 슬픔과 후회에는 잃기 싫었던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잃을 줄 몰랐기에 당황스러운 마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공허함과 후회는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지만, 그렇게 보냈던 시간들 때문에 그 기억들이 있던 자리는 잘 아물지 못해서 흉터가 되었다.
잊고 있었던 흉터를 무심코 발견했을 때 이상하게 아픔이 느껴졌다. 분명 오래전에 생긴 흉터일 텐데 나는 아픔을 느꼈다. ‘그때의 감정이 아직 나의 안에 맴돌고 있었구나’ 생각한다. 나는 후회만 하느라 남은 기억들을 정리하지 못했다. 공허한 자리만 보느라 내 곁에 남아있고 싶어 했던 좋았던 기억들이 지쳐 떠나는 것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픈 기억들만 남아버렸다. 좋았던 기억들도 아팠던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질 만큼 정리되지 못한 기억들은 서로 엉켜서 그저 아픈 기억, 나쁜 기억, 후회하는 것들로 남아버렸다.
마음의 흉터는 어지간하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한다는 말을 믿지 않기에, 사람과 사물을 포함한 어떤 무언가를 잃은 자리를 다른 무언가가 채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공허함과 빈자리를 잘 아물게, 혹시나 상처를 받았다면 더욱 히 마음의 약을 잘 발라주어야 한다.
나에게는 없앨 수 없는 흉터들이 많이 존재한다. 기억들도 그렇고 쏟아진 감정으로 인해 생긴 수많은 흉터들. 나는 더 이상의 흉터를 만들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 그래서 늦었지만 약을 발라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처가 난 곳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면 따갑고 아프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점차 치유되고, 약간의 흉터를 남길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잊히고 만다. 마음의 상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떠난 자리를 잘 보살펴주고, 아프겠지만 기억을 꺼내어 조금씩 정리를 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 시간을 거치고 나면, 아팠던 기억은 있지만 그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리된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의 흉터는 차이가 난다. 흉터와 흔적의 차이다. 두 개의 공통점은 아프다는 것. 차이점은 아픔의 기간이다. 얼마나 신경을 써서 보살 펴주느냐에 따라 길이 나뉜다. 같은 아픔이어도 아픔을 느끼면서 정리를 해두면 그 후에는 신기하게 좋은 기억이 더 많이 생각이 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픈 기억만이 오래도록 남는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잃지 않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내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바뀌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잃을 수도 있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변치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잃어가고 떠나보내도
우리는 늘 우리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