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삶이 쌓인다. 최선을 다해 성공을 갈망한다.
석가탄신일, 공휴일의 출근은 일요일 저녁보다 여유로운 마음이다.
긴장감을 내려놓고, 우선순위나 중요도 같은 것들에 연연해 하지 않고 일과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볕이 뜨겁다. 아득했던 여름이 왔다. 계절이 돌 때마다, 시간은 참 빠르게 가는데 계절은 느리게 돈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은 추억이 그립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삶은 여전히 버겁다. 기대했던 기적은 벌어지지 않았다. 분출되지 못한 욕망들과 빛바랜 꿈들만 퇴적되어 무게를 더한다. 나는 여전히 대표로 살고 있다. 살찌우는 회사가 아닌, 살을 뜯어내어가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회사로 살고 있다. 기쁘지 않다. 땀방울이 아프다.
몇년 전의 과거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마주했을 때 맞이하는 것은 괴리감이다. 최선에 대해 생각한다.
최선이란 무엇일까. 그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절대적인 것일까 상대적인 것일까.
최선을 다해 성공한다란 말의 최선은 아마 절대적인 것일 것이다. 절대성을 지니기 위해선 비교 가능해야하고 비교가능하기 위해선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한데 그 최선의 지표는 한번도 들어본적 없으니, 나의 상대적 최선과 세상의 절대적 최선의 괴리감은 점점 더 커진다.
엄밀히 얘기해면 최선을 다했다 라는 이야기는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가 붙었을 때 완성될 수 있는 문장이 아닐까.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는 의심할 여지가 있지만, 최선을 다해 성공했다. 라는 말의 최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니, 성공해야한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배출구다. 그 속에, 내 퇴적된 욕망들과 빛바랜 꿈들을 모두 부어넣고,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