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기분 좋게 웨이트를 하고 동생과 남산을 뛰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첫 남산 완주를 마쳤다.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신 뒤 월요일 아침.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이 찌르르 아프면서 저렸다. 11년 전 사고로 피부 이식과 힘줄을 연결했던 엄지 발가락에서 짓물이 나오고 있었다. 어제 밤에도 괜찮았던 발이 순식간에 퉁퉁 부었다. 급하게 근처의 병원에 갔지만, 피부 이식을 했고 큰 수술이 들어가 있는 발이라 여기선 진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11년 전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크고 작은 6번의 수술을 했었고 3개의 다른 병원에서 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11년 전 수술을 했던 병원의 이름을 찾았다. 어떤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고민했는데 의료진 얼굴을 보니 바로 기억이 났다. 6개월 간 12인실에서 살았던 기억도 같이 났다.
모두 공장에서 일하시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절단되어 입원한 분들이었다. 특이하게도 그곳은 방장 제도로 병실이 운영되어서 어느 순간 내가 그 방의 방장으로 지냈던 시간도 기억이 났다. 살이 잘 붙는다며 개고기 수육과 소주를 권해주시던 아저씨들은 지금 잘 지내시려나. 다 좋은 분들이었다.
다행히도 당일 진료는 어렵지만 다음날 진료가 가능하다해서 예약을 하고 오늘이 되었다.
내 엄지는 동작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아주 다행히도 약간의 지지력을 가지고 있어 절뚝이는 것은 피할 수 있었고 그렇게 10년을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다 자전거부터 시작해서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 혹시 좀 괜찮아졌나 해서 발을 움직여봤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내가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들고 굳이 슬퍼할 필요있나 해서 출근을 하고 일을 했다. 그러다 밥을 먹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작년, 그리고 올해는 운동으로 버텼다. 내 친구는 술과 담배 밖에 없었는데 운동이라는 좋은 친구가 생겨 건강하게 잘 보낼 수 있었다. 슬픔이 밀려오면 달리고 무기력하면 들었다. 운동을 하다보니 먹는 것도 신경을 쓰게 되었고 수면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매일 달고 살던 술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다시 운동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다시 암울하고 무기력했던 나로 되돌아가면 어떻게 하지?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친구가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지? 외로운 마음까지 들었다.
누구에게나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 사막을 걷는 사람에게는 오아시스가 필요하듯.
운동은 유일한 내 오아시스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괜찮았다. 홀로 달리는 것도 좋았으니까. 매일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며 나는 유일하게 배신하지 않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너질까봐 무서웠다.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막을 살게 되더라도, 딱 하나의 오아시스만 있다면 계속할 수 있다.
혹시나 내가 지금의 오아시스를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다시 찾아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오아시스지 꼭 그 오아시스여야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괜찮아졌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언제든 숨어들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보낸 시간들이 나를 회복시켜 주는 것. 이게 있다면 삶은 계속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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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다녀왔다. 11년 만의 방문이었다. 병원은 위치도 바뀌고 건물도 신식으로 엄청나게 커져있었다.
당시 내 다리를 수술했던 의사는 살이 빠져있었다. 문제는 두개였다.
1.피부 이식 부위에 염증이 매우 심하게 생겼다"
2.기존에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던 내 발가락 근육이 염증으로 인해 더욱 굳었다
"당분간 매일 통원하며 주사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발가락 기능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고 일단 염증을 치료한 뒤 수술에 대해 이야기 해보시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다시 발가락 수술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사치료가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틀림없이 이 염증은 사라질 것이다. 인대는 회복이 안되더라도 이 염증만큼은 주사치료에서 끝날 것이다.
발을 소독하고 깊스를 했다. 혈관 주사를 맞았다.
"당분간 매일 오셔서 주사를 맞고 감염 부위를 소독해야 합니다"
왕복 두시간이 넘는 거리. 다리는 불편했다.
약국에서 약을 타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머릿 속이 복잡했다.
가장 큰 두려움은 이제 일을 마친 후 마주하게 될 텅빈 공허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땀으로 밀어내며 보내왔다.
열심히 땀흘려 시간을 보내고 기절하듯 잠들면 아침이 온다. 그럼 출근이다.
무너지긴 싫었다. 그다지 전진한 것도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내가 발견한 작은 모래성을 지키고 싶었다.
어쩌지 고민을 했다. 선택지는 몇가지 없었다.
"글 쓰기" 운동하기 전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내 취미이며 나의 도피처.
운동으로 채웠던 시간을 글을 쓰며 보내야겠다 결심했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