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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시형 Sep 18. 2024

자의식과잉 풍선이 터진 뒤

내 실패는 외부적 요인이 컷다고 해도 그 실패 이후의 4년은 핑계를 댈 수가 없다. 

내가 무너진 것이라는 것 말고는 그 시간을 채워넣을 문장이 없다. 

오늘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자의식과잉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인지했다. 자의식과잉이란 무엇일까? 

객관화의 부재를 말한다. 그릇보다 자아가 커 메타인지를 하지 못하는 상태.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과거 이십대의 나는 나는 항상 속도에 집착했다 


앞서나가고 돋보이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사업이 무너졌을 때도 나는 씀씀이를 줄이지 못했다. 몰입이 필요하고 다시 시작하는 단계에서 해야하는 기본적인 노력들을 하기가 싫었다. 고백하자면 억울했다. 내가 이십대때 이렇게 쌔빠지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꿈을 향해 살았는데 다시 해야 한다고 ? 라 생각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나는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사업가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매료된 사업가에 가까웠다. 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평생 하리라 생각했던 사업이 사라지고 나서 그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사업을 하며 몇번의 성공경험으로 알게된 얄팍한 인사이트는 다양한 시장 속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해주었지만 정작 그것을 해낼 체력과 실무적 역량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투자를 유치해서 빠르게 인재를 확보한다던지 했어야 했지만 그러기도 싫었다. 투자게임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일에 끌려가는 삶이 되기 너무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표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사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는 생각으로 계속 시간을 허비했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 진지하게 사업에 임하면서 건강하게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의식과잉 상태는 존재했다. 


나는 잘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꿈이나 목표가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내 삶의 목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고민을 해 보았다. 정말 담백하게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가만히, 내 스스로 포장한 욕망들을 걷어내고 최대한 솔직하게 내 욕망을 정의해보려 노력했다. 

그랬더니 어처구니 없는 욕망이 튀어나왔다. 


꽤 오랜 기간 연애를 하지 않았다. 연애라는 것이 어느순간부터 피곤하고 번거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력 자체를 멈췄고 가끔 다가오는 인연도 피했다.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건장하고 건강한 남자가 이성을 만나는 활동을 멈춘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정상적이지 않다. 


카페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의 마음이 무엇이었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연애 안한다"를 해체 해보니 안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못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자의식과잉과 연관이 있었다. 지금 상황의 나는 원래의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래의 내가 되어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말해 스스로 자신이 없었던 것을 회피했던 것이다.


나는 아픈 사랑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기억이 모든 사랑의 기억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젠 더이상 그녀가 떠오르지 않는다. 떠올려도 아프거나 그립지 않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상태에서 다시 돌아보니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난 사랑에 빠졌을 때 모든 에너지가 강렬해지는 형태의 인간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십대를 보낼 수 있었고 그들이 주는 안정감과 신뢰는 내가 불확실한 세계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든든한 보금자리 같이 느껴졌다. 


난 사실 항상 사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가 편한 척 했다. 스스로를 속였다. 

그 생각을 시작으로 소박한 욕망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사업하기 전의 나" 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유쾌하고 웃긴놈이었다. 사업가로서의 특별한 비범함은 부족한 사람이었다. 

반골기질이 강해 어렸을적 부터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은 명확하게 반대하고 저항했다는 특징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어느순간부터 나는 나를 새로 구축했던 것 같다. 표시형은 이런사람이다 라고 정의한 뒤 그렇게 연기했던 것들도 많았다. 물론 그 연기가 길어지다보니 이제는 내 일부가 된 것도 사실이다. 


어떤 목표를 정할 때 거창하고 엄격하게 정의했다. 그리고 액션하지 못했다. 내 목표를 재정의 해보았다. 


돌아보면 삶이란 것을 제대로 살아보기 전에 사업을 시작했고 언제나 "사업의 목표"를 정하는 행동만 해봤지 내 삶의 목표를 정해보는 작업은 굉장히 낯설었다.  삶 안에 사업이 있는 것인데 사업 안에 삶이 있는 사람 같이 살았다. 


혼자서 이 문장을 쓰고 스스로도 좀 웃겨서 혼자 웃었다. 

목표 : 따뜻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관계 형성 

그랬더니 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점, 지금 가장 많이 시간을 쏟고 있는 일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난 내가 뭔가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컷던 것 같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의식과잉이 풍선이 터지고, 솔직한 나를 마주해보니 나는 꽤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이성상을 생각하고 나는 그 이성상에 부합하는지를 체크해보았다. 


내 이상형은 다음과 같았다. 

1. 스스로 정의한 삶의 비전이 있고 이를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 

2. 운동을 즐겨하고 스웻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 

3. 남과 비교하지 않고 독립적인 자기 세계를 멋지게 살아내는 사람 

4.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를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있는 사람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스웻라이프를 즐긴다는 점에서 2번은 충족했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독립적인 세계를 멋있게는 아니지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아이를 좋아하지만,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의 성숙함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것은 1번이었다. 여기서 한번 더 역설이 발생했다. 사업가가 자신의 삶에 비전에 제일 자신이 없다니. 참 우스웠다. 


이번 명절은 참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기였다. 글도 실컷 썼다 지우고 나를 조금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일 부터 일상에 변화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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