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보내며.
시간이 늦었다.
빈둥거리다가 시간은 두시가 다 되었다.
멋모르고 스타트업에 뛰어들었고, 일년차에는 그저 너무 재미있고 행복해서, 이년차에는 생존만 생각하다 올해도 다 보냈다. 이제 삼년차를 앞두고 있다. 같이 시작했던 형은 벌써 20대 후반이 되었고 나도 더 이상 어리다고 하기엔 애매한 나이가 되었다. 작은 미팅에도 바들바들 떨고 거래처와의 전화에 멘트를 미리 읽어 내려가던 내가, 이제는 여유롭게 거래처와 전화를하고 가끔은 농담도 던진다.
시간은 너무 빨리가서, 여름이 왔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들은, 순간으로 기억하기에는 너무 모난 점 없이 평범해서 기억나지 않는다.
참 빨빨거리면서 보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건 기억보다 컴퓨터 속 파일들이다.
조금씩 늘어가는 매출과 파트너사들을 통해 그래도 우리가 시간을 보내긴 했구나 느낀다.
과연 이걸로 김밥 한줄은 사먹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모델이 이제는 제법 자라서 회식자리에서 가끔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여전히 우리는 귀엽다.
오늘 집에 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년엔 조금 어른스러워질 것 같다는 생각.
좋은 기회가 왔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작은 기회지만 우리에게는 꽤 오래 꿈꿔온 상상이다.
기분이 좋다기 보다는, 떨림이 온다.
다시 시작이다.
내년 내 폴더 속 파일명이 어떻게 채워질지 궁금하다.
하나 확실한건, 우리팀은 최선을 다해서 생존해 낼 것이고 나쁘지 않은 결과를 냈다고 웃으며
오늘처럼 연말을 보낼 것이다.
우리는 멋지고 근사해 보이진 않아도, 항상 진짜로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