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동차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과 멕시코와 취업난.

그리고 나

by 표시형

현대 자동차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과 멕시코와 취업난.


“쉽지 않다 시형아. 쉬운 일이 없는 것 같아” 진이 다 빠진 얼굴로 재선이형은 내게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난 그를 훑어 보았다. 잘 다려진 파란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흠,, 오늘 따라 더 깔끔해 보이네 라고 생각하며 대답을 하려던 찰나 옷차림에 비해 다소 튀는 듯한 빨간색 로퍼가 눈에 띄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회의하느라 신발을 보지 못했었다. 빨간색 로퍼라니, 역시 재선이 형은 별종이야.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난 빨간색 로퍼를 쳐다보며 힘주어 말했다.


“그러게, 그래도 저번 보다는 나았잖아. 믿는 수밖에 더 있겠어, 이제부턴 근성이야 버티기 싸움이라고. 이미 성공은 저기 너머에 있다, 우린 거기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말은 뜨거웠지만 나 또한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담배 한 까치가 간절했다.

“그래! 힘내보자 시형아, 맞아 인생 쉬운 거 없지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 오늘은 여기 까지 하고 내일 다시 달려보자!”

빨간색 로퍼를 신은 재선이형이 2013년 형 브라운 브레스 백팩을 매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한 말인지 , 혼자서 한 다짐인지 헷갈렸지만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그래 해보자!” 의지가 결연했다.


시한 폭탄 같은 걸 만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든 터지기 일보직전이 가장 흥분되기 마련이니까. 더럽게 때가 껴 누렇게 빛바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달빛이 노란 이빨 같았다.


불을 끄고 나가기 전, 나는 ‘우리도 스티브 잡스! 크리에이티브 실 506호’를 둘러 보았다.

초록색 벽지에는 에이포 용지로 인쇄된 스티브 잡스, 엘론 머스크, 워런 버핏, 박찬욱 감독의 인물 사진이 흑백으로 붙어있었다. 대체 누가 디자인 한 건지 모르겠지만, 바보 같은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이 인물 사진 덕에 난 매일 사무실에 들어 올 때마다 스티브 잡스가 올드보이의 사설감옥에 갇혀 있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스티브 잡스가 내가 말했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역시 이곳은 너무 비현실적이야. 혼자 생각하며 불을 껐다.


너무 유치해서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이 낡은 학교 지원 사무실에서, 우리는 “스펙 스펙 거리는 청춘이 문제다! 하고 싶은 걸 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작은 소극장을 빌려 20대 초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사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원래 시작이 형편없을수록 결과는 굉장한 법이니까. 더럽게 시시한 대학생들인 우리는 반전을 꿈꾸고 있었다.

사무실은 4층이었다. 물론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고생했어 형, 전철 타고 갈 거지? 난 담배 한대 피고 갈게 먼저 가”

“엉 내일 보자, 너도 조심히 타고 가”


역을 향해 걸어가는 재선의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강연을 열게 될 줄은 몰랐다.

재선이 형과 나는 둘 다, 뻔한 대학생활에 진저리가 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에 진저리가 나 있었다. ‘대외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이젠 먹고 마시는 술자리에서 조차 “롯데 자동차 파이팅”을 외치는 우리의 모습에 진저리가 나있었다. 아직 실감도 안 나는 취업난에 바들 바들 떨며 “대비해야 해, 공부해야 해, 뒤쳐질 순 없어”를 외치며 새벽까지 술을 퍼먹는 대학가의 술집 분위기에 구역질이 나왔다. 낭만 따위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진짜 “열정”이었다.


“대기업에 취직해야 해”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해” “부모님을 생각해야지”


페이스북에는 “롯데 자동차 대학생 멋쟁이”라는 직업을 달아놓고 학력 란에는 지난 여름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을 올려놓고, 인스타그램에는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약간은 빈티지한 분위기의 음식점에서 먹은 “멕시코” 음식을 업로드해놓아야 했다. 아참, 해시태그는 필수였다 #행복한 주말 밤 #다이어트 포기.

“롯데자동차”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과 “멕시코 음식”


신문기사와 방송에선 연신 대학생들의 취업난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 속에서는 “롯데자동차”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과 “멕시코 음식” “유럽여행” 등등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상했다. 이건 틀림없이 이상했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바꾸지 않는다면, 난 또 이상한 세상에 또 금방 적응해 버릴게 뻔했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가 돼라, 그리고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


마약쟁이가 되지 못하고 인 서울 중위권 대학의 갓 전역한 군필자가 된 내 마음속엔 아직 한국에 적응이 덜 된 자그마한 체 게바라가 살고 있었다. 학창시절 엠피쓰리 속에는 펑크 음악을 가득 채워놓고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수능 공부만 붙잡고 살던 시절부터 난 그를 생각했다.


그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쩌다가 사람들의 양말에 그의 초상화가 그려지게 되었는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는 적어도 멋지게 시거를 빼어 물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점이었다.


난 주머니에서 땀에 절어 꼬깃꼬깃해진 마일드 세븐을 꺼내 입에 물며 혼잣말을 했다.

“스펙이 다 뭐야,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돼, 안 그럼 진실성이 안 느껴진다고”

작가의 이전글팀플과 매운 족발 매운 닭발 매운 떡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