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놀랍게도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나에게 엄마는 너무 작고 지켜줘야 될 존재 같이 느껴져서, 그냥 잘 지낸다는 걸 확인하면 마음이 놓여 잊고 지내기 일쑤였다.
내가 오늘 보고 싶었던 엄마는. 지금 우리 엄마 말고, 내가 아주 어린 철없던 나이 때 두렵고 무서우면 품에 안겨 울 수 있는 그 때 그 '엄마'였다. 하지만 더 이상 나에게 그런 엄마는 없다. 더 이상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겨 울기엔 아들이 너무 컷고, 엄마가 너무 작아졌다.
두려움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온다. 홀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 갈때, 그냥 마음 속에 훅 하고 들어와 자리 앉는다. 두려움은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고, 표정이 없어지게 만든다. 욕지거리를 뱉게 만들고, 추위를 더 타게 만든다. 오늘 나에게 두려움이 왔었다. 내 두려움은 딱 하나. 몸이다.
다리의 통증을 평생 가져가던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내 마음 속에는 이미 두려움이 들어앉아 있었고, 내가 의지할 것이라고는 안타깝게도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의사 밖에 없었다.
의사들은 한 명 한 명의 환자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은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절망한 사람은 그저 일반적인 손님일테니까. 이를테면 컴퓨터와 같다고 느꼈다. 기계적으로 증상을 살피고 처방을 내리는.
어쩌면 인공지능은 먼 곳에 있는게 아닐지도 모른다. 기계화된 인간. 그 것이 인공지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의지할 것은 그 인공지능 뿐이었고 인공지능은 기계적으로 처방을 내렸다. 젠장 한달 동안 치료를 해보고 진척이 없으면 충격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런 진료들에 대해 강한 두려움이 있는 나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리고, 내 발을 만져주며 괜찮아 질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 한 것은 재활치료사였다.
어쩌면 그녀 또한 인공지능일지 모르겠지만, 난 인공지능으 따뜻함에 감사했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었다. 글쎄. 다음 번에 갈때는 작은 선물을 사가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었던 저녁, 엄마 대신 도균이가 왔다.
내가 제일 믿는 친구. 그냥 오늘은 술 한잔 하면서 솔직히 다 털어놓고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었고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당구를 치고 게임을 하고 헤어졌다.
사람과의 이별이 이렇게 아쉬운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도균이가 미국에 가면, 난 조금 더 외로워질 것 같다.
앞으로는 저녁이면 걸려오는 도균이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없을테고, 언제든 도망가면 그 녀석이 부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곤 했었는데. 미국은 사실 좀 멀다.
설날 술을 마시게 되면, 그 때는 조금이나마 고마운 마음을 꼭 전해야겠다.
요새 다시 시가 쓰고 싶어졌다. 마음이 풍부해진 탓이다.
이럴 때는, 열기 컨텐츠를 써야한다. 조만간 진심을 담아 써보고 싶다.
-시가 쓰고 싶다.
오늘 같은 날에는, 시가 쓰고 싶다.
어설픈 마음 속 시어를 꺼내 투박하게 늘어놓고.
이 운율 저 운율 붙여보며 그럴 듯한 말을 만들어 내보다
돋보기로 구석 구석 살펴보고, 낡은 것 먼지 탁탁 털어 낸 뒤.
집 가는 길 하늘 위에 걸어두고 싶다.
찬 바람 불어 마음까지 시려질 때면,
술김에 추운줄 모르고 반팔 입고 피던 담배처럼.
풋풋한 기억에 헛웃음한 움큼 뿌려놓고
잔득 비벼 한 그릇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