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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지 Sep 03. 2024

별은 늘 반짝이고 있었다, 잊고 있었을 뿐

별을 담은 눈빛 Colombo, Sri Lanka

"카타르 항공에 다니면서 제일 자주 갔던 곳이 어디에요?" 유럽이나 미주라고 대답할 것을 기대하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콜롬보요!" 하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콜롬보는 스리랑카의 수도이다. 스리랑카가 그렇게 여행지로 친숙한 곳이 아니다 보니 콜롬보라고 하면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주 가는 곳이 콜롬보 일 줄은 몰랐다며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중동 항공사 입사 전까지만 해도 스리랑카는 가본 적도 없었고 가볼 생각도 없었던 관심 밖의 나라였다.


카타르 항공은 비교적 신 기종이 많은 항공사다. 새로운 항공기가 들어오면서 항공기의 기종이 다양해지다 보니 기종 교육을 받을 때도 많은 기종을 한꺼번에 배워야 하고 암기해야 했다. 머리로 외워도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 매뉴얼이 항공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간혹 조작 오류가 발생하는 일이 생겼다. 이에 회사는 승무원의 그룹을 항공기의 기종에 따라 나누게 되었다. 항공기마다 주로 가는 취항지가 있어 기종 그룹이 생기니 그룹 별로 자주 가는 취항지가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스리랑카 콜롬보로 한 달에 서너 번 비행 가는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사실 더 좋은 곳으로 자주 비행을 가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 당시 호텔도 리뉴얼 중이어서 리뉴얼하기 전의 호텔방은 정전도 자주 되고 가구들도 모두 낡았었다. 그렇지만 호텔 직원들이 너무 친절해서 작은 부탁도 웃으며 들어주는 곳이라 큰 위안이 됐다. 하루는 배정받은 방에 들어갔는데 내 침대 위에 도마뱀이 턱 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놀란 나는 호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늘 있는 일인 양 밝게 웃으며 도마뱀을 잡아주었고 그 사람의 해맑은 웃음에 나도 덩달아 풉 하고 웃음이 터져 하하 호호 마주 보며 웃었다. 귀여운 도마뱀과도 웃으며 손 흔들며 헤어졌고 도마뱀이 잠시 머물렀던 침대에서 다 잊어버리고 쿨쿨 꿀잠도 잤다. 비록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는 곳이었지만 현지인들의 맑은 영혼과 깨끗한 자연은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콜롬보 호텔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네곰보 비치라는  해변이 나온다. 시원한 해변가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어 자주 찾는 곳이었다. 그날은 호텔 셔틀버스 시간이 어중간해서 '툭툭'이라는 이동 수단을 타고 네곰보 비치로 향했다. 툭툭은 바퀴가 3개인 오토바이와 차를 섞어놓은 듯한 이동수단으로 택시보다 저렴해서 한 번씩 이용하곤 했다. 덜컹 거리는 툭툭 안에서 함께 탄 동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해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기에 편하기보단 신나고 재미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우리는 다 함께 해변 산책을 했다. 그날은 나 혼자만 한국인이었고 다른 동료들은 모두 필리핀 국적이었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밀려오는 파도를 요리조리 피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러다 동료 한 명이 하늘을 보라고 외쳤다. 수많은 별이 밤하늘을 수놓은 장면 모두 입이 떡 벌어졌다. 너무 아름답다며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다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반짝이는 별들이 그들의 눈동자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아직 동심을 잃지 않은 그들의 순수함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다웠다.


밤하늘 빛나는 별 한 번 올려다볼 여유가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머리 위에 별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이후로 한 번씩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멀리 반짝하고 빛나는 별이 안녕하고 인사하는 것 같아 나도 안녕 대답하곤 한다. 나에게 일상의 한 조각을 반짝일 수 있게 도와준 순수한 영혼들에게 감사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는 전사람들의 눈이 휴대폰 액정 빛에 아련하게 비친다. 지친 마음이 반사되어 서글프게 아롱거린다. 조금만 고개를 들면 창 밖에 멋진 풍경이 위로해 줄텐데 아무도 고개 드는 이 없다. 우린 모두 가슴에, 눈동자에 순수한 별을 품고 산다. 일상의 지친 마음, 아프고 슬픈 마음의 사람들이 잊고 살던 그들 안의 별을 얼른 다시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슬픔은 거두고 행복한 반짝임이 그대 눈에 콕. 박힐 수 있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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