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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랑 Sep 02. 2023

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되는 걸 Philadelphia, USA.

카타르항공에 다니면서 미국 필라델피아 비행을 여러번 했었다. 첫번째는 눈 내리는 발렌타인데이, 그 날의 분위기와 어울리던 러브파크가 인상적이었고 두번째는 장보러 가서 한가득 사온 체리를 먹으며 풀잎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을 보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세번째 필라델피아는 쉽지만은 않은 비행이었지만 그만큼 재미있기도 한 비행으로 또렷하게 남있다.

카타르에서 필라델피아까지 10시간이 넘는 기나긴 여정에 오르기 전, 함께 일하는 크루 목록을 보다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입사 2개월차에 같이 오사카 비행을 갔던 한국인 동생이었다. 거의 2년만에 같이 비행을 하게 되서 너무 반가웠고 긴 비행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기뻤다. 예상대로 마음 맞는 동료와 일하니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도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무사히 필라델피아에 도착했고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다. 호텔에만 있기엔 아까운 날씨였던데다가 동생과 오랜만에 다시 만나 비행한 반가움에, 둘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디에 갈까 고민하던 우리는 필라델피아의 시내에 자리한 러브파크에 가기로 했다.



에겐 두번째 러브파크. 시원하게 솟아오르 분수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처음 필라델피아 비행을 왔을때 봤던 러브파크는 한겨울 눈 내리던 풍경이었는데 여름이 되어 다시 만난 그 곳은 또 다른 풍경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눈오는 날 오돌오돌 떨면서 걷던 길을 햇볕 쨍쨍한 날 반팔 입고 다시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걸 느끼기도 했고 여전히 건강하게 비행하면서 곳곳을 다니는 게 감사하기도 했다. ​또 언제 이 길을 걷게 될까 괜시리 궁금하기도 하고 만약 그만둘 때 까지 필라델피아 비행이 다시 또 스케쥴로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을거란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오롯이 그 순간을 즐겨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금 이 시간, 다시 또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곳에서 맘껏, 원도 한도 없이 그 시간, 그 장소를 만끽하겠노라고 혼자 결심했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카타르로 돌아갈 시간. 홈 베이스로 돌아가는 비행에선 얼른 집으로 가서 제대로 된 휴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장거리 비행 시작도 전에 기체 결함이라는 갑작스러운 소식이 찾아왔다. 이미 손님이 다 탑승한터라 만석으로 꽉꽉 찬 비행기에서 항공기 결함이 해결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하는 상황이었다. 항공기 문은 닫았지만 이륙하지 못하고 장시간 지연이 될 경우 음료 서비스, 간단한 스낵 서비스를 해야하기에 그만큼 일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곧 해결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점점 지체되어 무려 3시간동안 지상에서 대기해야했다. 그래도 이륙하면 주무실거라고 예상한 손님들은 그날따라 주무시는 커녕 기타치고 노래를 부르며 비행을 즐기셨다. 한시도 쉴 새없이 왔다갔다 하느라 진짜 힘들었지만 어찌됐건 목적지에 안전하게 잘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웃으며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18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 무사히 카타르에 도착했다.

돌아보면 삶이 늘 계획대로만 되진 않았었다. 그래도 늘 그랬듯이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는 걸 믿는다.

생각지도 못한 인연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예상치 못한 비행기 결함에 출발 시간이 지연돼 18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일했던 날. 그러면서 삶이 늘 계획대로만 되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비행. 그래도 결국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다시 또 새 날이 밝듯이 그 과정은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더라도 결국 그 마지막엔 내가 꿈꾸는,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거라 믿는다. 조금 늦더라도, 예상했던 방법과는 조금 다르더라도, 결국엔 다 잘 될거라고. 지치는 날이면 다시금 이 날의 비행을 떠올리며 나를 위로다. 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결국은 다 잘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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