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돈다. 내 수건, 내 티셔츠, 내 잠옷. 내가 세탁기였으면 좋겠다.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공무원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엉뚱하게도 정확히 3년뒤 내가 교사로서 사명감이 없음에 화가 났고, 다시 3년 뒤 교사로서 사명감을 걷어내려고 발버둥쳤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안정적인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꿈꿨고, 교사가 된 후에는 무리하게 끼워맞췄던 사명감이 버거웠던 것이다. 맞다. 나의 이십 대는 위성의 삶이었다.
그간 내 슬픔의 이유는 행성의 중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몇년 전 친구가 마련해준 한 선생님과의 티타임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전통찻집에서 그는 나의 삶이 뻔하다는듯 조곤조곤 잘도 말했다. 친절한 어투 사이에 깊게 밴 날카로운 사회생활 짬바로 (공무원으로서)교사의 삶에 대해 까내렸다. 내 행성 하나가 폭파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사명감이라는 새로운 행성이 등장했고, 나는 그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2018년 장기하와 얼굴들은 마지막 앨범 ‘mono’의 전곡을 모노로 믹스했다. 타이틀이었던 ‘그건 니 생각이고’부터 아웃트로인 ‘별 거 아니라고’까지 주제의식도 모노로 통일했으니 앨범을 통으로 듣고 나선 하나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바로 ‘나’! 앨범 소개에서 ‘마치 남에게 훈계하는 듯한 말투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다. (중략) 날고 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고, 그건 경험이 쌓인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남들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씩씩한 척하며 제 갈 길 가면 되는거다.’라고 말하는 그들 덕분에 자전할 용기가 생겼다면 너무 팬심일까?
이번에는 가장 최근 팬심을 고백하고자 한다. 유튜버 ‘이십세상진(@mditrpsm_79)’이다. 서른이 넘은 아저씨가 남고생 브이로거에게 푹 빠져있다고 말하긴 좀 겸연쩍지만 자전하기로 한 마당에 이마저도 밝힌다. 수능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빡빡이가 첫 인상이었다. (여행을 가느라 친구들보다 먼저 학교장허가체험학습을 모두 써버린 탓에 수능 후에 출석했던 기간의)학교 브이로그가 그의 채널에 빠진 결정적인 입구가 되었다. 대학 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대학 밖에서 배울 수 있는게 훨씬 많다고 대답하는 그, 대학에서 배우는 건 밖에서 배울 수 없어 아쉬울 수 있다고 다시 걱정하는 선생님에게 말 대신 영상으로 대답하는 그의 멋짐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올해 스무살이 된 상진은 도네이션하우스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확실히 그는 자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미주알 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그건 니 생각이고’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이다. 누군가 상진에게 ‘도네이션 하우스가 뭔데? 군대 다녀와서 하지 그러니?’라고 말하면 그는 영상으로 이렇게 대답할테다.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이 글은 세탁기 그리고 LP의 삶을 살기로 마음 먹었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사회에 필요한 사람을 포기하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다. 자주 ‘자전’을 되뇔 것이며, 위성으로 살기 위해 행했던 겉치레를 내려놓겠다.
*지난 3N간 철저한 문과인으로 살았던 저에게 천체 개념을 이해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과학적 오개념이 있다면 살짝 눈감아 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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