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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ug 05. 2020

정선생이 만나자고 해서 / 딸 가진 아빠 마음

초등 경기 6년차, 빵쌤을 만남


평생 소년으로 살 줄 알았는데 나이 30개를 넘게 먹고 보니 이제 슬슬 아저씨가 되어갑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제 짝을 찾아갔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저만 남았네요. 제게 큰 과업으로 느껴지는 결혼이지만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결혼하고 싶다..’생각이 듭니다. 최수종이었다가 이경규였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그래도 결혼하길 잘했다.”라고 끝내니까요. 빵쌤은 결혼하길 참 잘했다고 말하는 친구 중 하나입니다. 작년에는 예쁜 딸을 얻어 부성애 뿜뿜하는 프로 애아빠가 되었습니다. 17개월 딸을 가진 교사 아빠의 마음을 들어볼까요?




자기소개 부탁해요.

교사로서 6년차, 17개월 딸을 가진 애기 아빠입니다.


17개월이면 말을 하나요?

말이 빠른 편이에요.


똑똑한가봐요.(대견)

똑똑하다기보다는(웃음) 저랑 와이프가 말이 많은 편이에요. 아이에게 말을 많이 걸어서 그런지 ‘아빠, 엄마, 귤, 까까’ 정도 그리고 단어의 앞글자는 얼추 말해요.


처음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기억해요?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했어요.(으쓱) 그때 엄마가 봤을 시기인데도요. “아빠빠, 아빠.” 이렇게 불렀던 것 같아요. 정말 좋았죠.


현재 육아휴직 중이죠?

연애 때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휴직을 꼭 하겠다고 했어요. 아빠랑 아이가 가지는 시간이 길수록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조언 때문에요. 다행히 남자이지만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이어서 와이프와 번갈아 가면서 육아휴직 중입니다.


한 사람이 육아휴직을 몇 년까지 쓸 수 있어요?

한 아이에 대해서 3년 쓸 수 있어요. 와이프도 3년, 저도 3년이요.


그런데 왜 육아휴직을 6개월만 사용하게 되었어요?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컸어요. 육아휴직 1년은 유급 휴직인데, 3개월은 돈이 100퍼센트, 4개월 이후부터는 본봉의 50%에서 기여금을 빼고 85%가 나와요. 15%는 복직 후 6개월 후에 받고요.


15%는 왜요?

육아휴직 후 바로 그만두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어요.


지금 당장 육아에 드는 돈이 한 두 푼이 아닐텐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제가 군 경력까지 하면 8년인데 계산해보니 60만원이더라고요. 


수당은 지급 되나요?

정근수당, 명절휴가비 모두 지급되지 않아요. 그래서 육아휴직을 고려할 때 그 수당 시즌에 맞추기도 해요. 여자의 경우 출산휴가 기간에는 정근수당, 명절휴가비가 모두 지급돼요.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급여가 현격히 줄어드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겠어요.

그나마 그거라도 나오는데, 다른 직업들은 그마저도 없죠. 반면 그것만 나오니까 힘들기도 해요.


아이는 복직을 하면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나요?

한 달 전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적응 기간이에요. 9시 반에 등원을 해서 3시 반까지 있어요. 복직을 하면 와이프가 아침 1시간, 오후 1시간을 써서 조금 일찍 데려다주고 일찍 데려오려고 해요. 와이프가 육아시간을 쓰기 눈치 보일 때는 제가 쓰기도 하고, 번갈아서 쓰려고 해요. “일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고 있어요. 등원은 그나마 괜찮은데 하원이 문제에요.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빨리 데려와야죠.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육아와 살림을 같이 하는 건 정말 힘들어요.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어딜 나가지도 못했어요. 문화센터도 닫으면서 집에서 애만 돌보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이 시기에 아이와 함께한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돈 생각만 안 한다면 좀 더 하고 싶었어요. 


어떤 마음일까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잖아요. 신나고, 즐겁고, 뭔가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슬슬 아가가 말도 트이고 이것저것 보고 만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좀 더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두 돌까지는 데리고 있고 싶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네요. 6개월만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니 너무 힘들어서 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죠. 

새 학기를 안 겪어본 해에요. 3월이면 새로운 아이들과 만나고, 환경 정리하고, 계획서를 썼을텐데 말이죠.. 올해 3월은 어땠어요?

업무를 안 하니까 정말 좋았어요. 처음으로 쉬는 해니까요. 3월에는 늘 긴장 속에서 보냈어요.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과의 만남, 학급운영에 대한 부담감, 수업. 그런 것들이 없으니까 좋더라고요. 가르쳤던 학생들이 보고 싶고 그런 건 있었죠. 저는 마음 편했어요. 10명에서 20명 되는 애들을 보다가 1명으로 인원수가 확 주니까 편했죠. 반면 하루종일이었죠.(웃음) 


육아를 전담하고 있나요?

아기가 돌부터 애착이 형성돼요. 이 시기에 저랑 같이 있었기 때문에 울고 싶고, 무섭고, 안기고 싶을 때 찾는 사람이 제가 되었었죠. 피곤해서 쉬고 싶을 때에도 어쩔 수 없이 제가 가게 될 때도 생겨요.(웃음) 


그런 순간, 기분 좋아요?(웃음)

여러 가지 감정이죠. 좋다가도 오늘은 엄마가 가면 좋겠다 싶은데, 엄마가 가도 해결이 안 될 때가 있으니까 지친 몸을 이끌고 제가 가는거죠.(웃음) 근데 그게 좋으면서도 와이프 입장에선 서운할 것 같기도 해요. 지난 일 년 동안 육아에 전념했는데 정작 찾는 건 아빠니까요. 24개월까지는 주 양육자에게만 가고, 이후에 범위가 넓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돌까지는 저를 많이 찾지 않을까 싶어요.


교사 아빠가 왠지 육아를 잘할 것 같아요. 남들보다는 자신 있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보는 애들이랑 아가랑은 완전히 다른 존재예요. 영유아를 보니까 초1은 인간이었던거죠. 교대에서부터 공부한 아이들의 심리 등등 아가에게는 적용할 수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백지 같은 상태거든요.


새로운 세계군요?

맞아요. 제가 교사라서 육아에 능숙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반면 와이프는 교사가 아님에도 엄마로서 해내는 일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똑같이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올해 성과 관련된 뉴스가 유독 많았어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뉴스는요?

‘n번방 사건’이 가장 충격이었어요. 예전에는 그런 뉴스를 보면 가해자에 집중해서 봤던 것 같아요. “어떻게 저런 새끼들이 있지..처벌을 해야 해..”하면서요. 자식을 가지게 된 다음에는 피해자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동 성 착취가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영상을 생성해야 구매, 구독할 수 있다고 해요. 딸 가진 아빠로서 마음이 어때요?

걱정이 정말 많아요. “딸 가지고 싶어요? 아들 가지고 싶어요?”하면 요즘 딸 키우기 힘든 세상이라서 아들을 키우고 싶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교육한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이후에도 계속 걱정이 번지겠죠. 


남자 선생님이 성에 대해 논하기 참 힘들어요. 여자선생님이 여학생, 남자선생님 남학생을 성교육하는 식으로 성별을 분리해서 교육하는 게 맞을까요?

예전에는 남녀를 분리해서 교육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요.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성교육을 받기 전 아이들은 이미 성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들었을거에요. 그래서 아이들과 가장 많이 만나는 교사가 올바른 성을 교육해야 하고, 학생을 성으로 나누어 교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성교육이 가능한 교사를 교육하는 일, 학부모의 열린 마음도 중요해요. 전남 영광에서 있었던 콘돔 수업 중 벌어진 일들만 보더라도 말이죠.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교육임에도 일부는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알려줌으로써 물들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모르는 것을 배우면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데 말이죠.

말씀하신 것과 유사한 연구를 본 적이 있어요. 10년 전과 지금 중학생의 성문화를 조사해보니 성관계율보다 콘돔 사용량이 월등하게 올랐더라고요. 긍정적인 성문화 변화를 보여준 자료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선생님이 성교육이 가능하도록 성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성교육이 정규교과가 아니어서 학교 측에서는 성교육 전담교사를 만들 필요가 없고, 보건교사가 담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어요. 성교육을 전담하는 교사가 필요할까요?

제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보건선생님께 성교육을 받고 학교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가 터졌을 때 담임인 제가 다시 한번 교육하는데 사람마다 시각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교사들에게 필요한 성교육 연수를 지원해주고 담임교사가 직접 하는 것이 좋겠어요. 교육 만능주의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성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교육은 아이들과 접촉이 가장 많은 담임교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교육 강사에 대한 의견은 어때요?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을 테고, 1~2차시 안에서 깊이 있게 다루긴 힘들겠죠.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담임교사의 성교육은 다르다는 의미인가요?

성교육과 성폭력예방교육은 다르잖아요. 성교육은 강사가 해줄 수 있지만, 성폭력예방교육은 특히 담임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들겠지만 아이들과의 관계가 형성된 사람이 하는 게 아이들에게도 좋고요.


제도에 대한 고민을 해보려고 해요. 표준화되어 있으면 평균점을 찾기 쉽더라고요. 선생님들 간의 격차도 줄이고요. 지금은 5~6학년에 성교육이 집중 이수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떤가요?

저학년도 하지 않나요?

필수교과가 아니다보니 관련 교과로 묶어서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많다는 생각이에요. 반면 5~6학년은 보건교사의 시수를 잡아서 10~15시간씩 수업을 해주시잖아요.

아무래도 고학년이 미디어, 스마트폰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자각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보니 고학년의 비중이 커야 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연령별로 해줘야 하는 성교육 방향을 고려해서 말이죠.


젠더교육과 관련하여 아웃박스라는 계정을 함께 살펴볼까 해요. 성평등한 교실을 위한 팁과 거울 캠페인이 인상적이어서 꼭 소개해주고 싶었어요.

교사들에게 꼭 필요한 계정이네요. 아웃박스에서 실행하는 연구들을 연수에서 만나봤으면 좋겠어요. 알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르니까요. 그리고 아이들의 특성을 반영하자는 말이 인상 깊네요. 주의할 점도 있겠어요. 분홍색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나는 분홍색이 좋아.”라고 했을 때 다시 반박할 필요는 없는 거겠죠. 그런 부분만 조심해서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방학 끝나고 개학하는 일과 육아휴직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건 다를 것 같아요.

복직하려니까 걱정되는 건 있죠. 아기가 없을 때는 퇴근하고 와서 다음날 수업을 준비해도 크게 부담되지 않았는데, 이제 퇴근하고 오면 애를 봐야 해서 수업 준비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아직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애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승진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또 육아휴직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육아 휴직을 한 해, 복직한 해... 점점 보직 교사에서 멀어지잖아요. 쉽지 않아요. 승진.


육아휴직을 경험해본 아빠로서 꼭 하고 싶은 말 있었나요?

육아휴직을 하니까 굉장히 외롭더라고요. 엄마들끼리는 모이는 커뮤니티도 많고, 단지 내 카페에서도 ‘19년생 엄마들 모여요~’, ‘아들 친구 구합니다. 딸 친구 구합니다.’하는데 나가보면 아빠는 없어요. 교사 중에서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요. 코로나 터지기 전에 문화센터에 갔을 때도 제가 유일한 남자였거든요. 혹여나 남자가 있다 하면 부부가 같이 오는 경우였고요. 그게 정말 외로웠어요. 애기를 데리고 뭔갈 많이 해주고 싶긴 한데 혼자 하니까 외로웠어요. 와이프랑 공유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아빠들과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럴만한 사람이 없어서요. 저는 말로 푸는 사람인데(웃음) 사회적 분위기가 아빠 육아휴직을 장려했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육아휴직 추천인가요?

정말 힘들지만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에 느끼고, 배우는 게 참 커요. 그리고 내 딸이지만 저녁에만 보는 것과 온종일 붙어 있으면서 느껴지는 감정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미운 정이 들었달까요? 힘들지만 애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더라고요. 아기가 없는 삶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제 인생의 중심이 된 거죠. 학교는 한 학기씩 쓸 수밖에 없지만 가능하다면 3개월이라도 써보면 좋겠어요. 힘들었지만 좋았어요.


인터뷰 소감

인터뷰한다고 하니 부담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혹시나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육아휴직 하는 아빠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다.’ 재밌었습니다. 




Interviewer 유월

Interviewee 빵쌤

Date 20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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