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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Sep 29. 2022

세 가지 관점으로 보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

'여성 연대' 토양을 넘어서 꽃 피운 서사

⇒ 다르지만 같은 세 자매가 귀결되는 곳

⇒ 여성 연대 이후의 다양성을 확보하다

⇒ 변주를 위한, 변주에 의한, 변주의 서사


ⓒ tvN <작은 아씨들> 대표이미지


(8화까지 감상한 상태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스포 주의)



이상하게도, 티빙에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재생 버튼을 누르기까지 몇 번의 망설임이 있었다. 맥락이 배제된 짧은 쇼츠와 캡처로 떠돌아다니는 <작은 아씨들>은 '가난혐오'라는 논란도 붙었고, '뻔한 부자들의 이야기를 재생산할 뿐'이라는 이야기도 붙었다. 오인주와 오인경이 간신히 모은 오인혜의 수학여행비를 말없이 들고 도망가는 엄마 안희연의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이 영상을 끝까지 볼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돈과 가난, 그리고 세 자매와 타인보다 못하게 이어진 엄마의 존재. 이 세 요소는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소개가 아니었을까, 나는 진짜 나의 현실을 마주하기 두려운 까닭에 재생을 누르지 못하고 다른 이의 감상평을 탓하기만 하는 게 아닐까. 


두 가지 의문에 '맞다'라는 답을 내리고 나니 전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나는 <작은 아씨들>을 보기 시작했다.




ⓒ tvN <작은 아씨들> 공식 홈페이지


 다르지만 같은 세 자매가 귀결되는 곳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기획의도는 이렇게 시작한다.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사랑도, 복수도, 모험도 아닌 돈. 어쩌다 젊은이들이 가장 듣고자 하는 이야기는 '돈'이 되었을까.


 이 이야기는 지독한 가난에서부터 시작한다. 가난은 시각적 재현과 타인의 편견으로 형성된다. 


영화 <기생충>이 가난을 공간적 분리를 통해 '반지하'로 내렸다면, <작은 아씨들>의 가난은 '옥탑방'에 있다. 세 자매 중 막내인 인혜가 부잣집 딸 혜린과 함께 계단을 한참 올라가고 건물을 다시 올라가야 도착하는 옥탑. 인혜는 한 번도 독방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오래된 샷시는 아다리가 맞지 않아 한 번 열리면 닫히지 않는다.


 부엌은 사람뿐 아니라 개미들이 지나다니는 길이 되고, 허리와 목을 한껏 굽혀야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에서 엄마는 쭈그려 앉아 플라스틱 대야를 놓고 열무를 다듬는다. 



"가난은 겨울옷에서 티가 난다"던가, "가난하게 커서 잘 참는다"라던가, "2년제 대학에 흙수저", "싸구려 구두를 신는 여자"까지 극 안에서 인물들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거나, 타인의 시각을 내재화한 발화로 스스로를 설명한다. 



인주와 인경에게 가난은 아주 짙은 얼룩을 남겼다. 돈 많은 고모할머니 댁 주변의 부유한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 인경과 생일날 케이크 살 돈이 없어 삶은 계란에 초를 꽂아 분 인주에게 어린 시절은 '가난', 이  한 단어로 설명된다. 이들은 인혜는 자신들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생일 케이크를 사서 인혜의 생일을 축하한다. 원했으나 받지 못했던 행위에 대한 욕구는 모두 '그나마 예전보다는 살만한' 지금 청소년기를 보내는 인혜를 향한다.



그러나 가난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인주는 인혜의 유학 비용을 대주겠다는 친구 혜린의 엄마 원상아를 찾아가 '인혜는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지만 이미 인혜는 자신을 위해 무리하는 언니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자신의 입과 타인의 입에서 가난을 내재화시킨 인주와 인경처럼 인혜의 기억 저 깊은 곳에는 가난이 낙인처럼 찍혀 있다. 



돈에 대한 욕망이 어디서 왔느냐 묻는 질문에는, 인주는 죽음을 든다. 그들은 생존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여 죽은 아이를 안다. 말 그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어서 죽은' 아이를 들쳐매고 뛴 엄마의 이미지는 세 자매에게 저마다 다른 흔적을 남기지만, 이 표상은 돈을 중심으로 한 근본적 욕망으로 발현된다.


인주는 '돈' 그 자체를 원하고, 인경은 '왜 우리는 돈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원하고, 인혜는 '돈도 없고 배울 것도 없는 집안으로부터의 탈출'을 원한다. 그 기반엔 모두 공유하는 한 자매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인주는 돈 많은 남자를, 인경은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죽음에 둘러싸인 박재상 일가의 비밀을, 인혜는 혜린이네 집의 하녀가 되어서라도 상류층으로의 도약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 극은 부자인 남자 주인공을 만나 기다리는 언제적 로맨스 서사도, 사이다 서사로 설명되는 직업적 성취를 이룬 자수성가형 성공 스토리도 없다. 


젊은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내 수중에 떨어진 출처가 불분명한 돈이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나 내 것이 되어버린 돈. 그 돈에 대한 욕망이 퍼지는 이야기다.




ⓒ tvN <작은 아씨들> 공식 홈페이지


▷ 여성 연대 이후 다양성을 확보하다



루이자 메이 울컷의 장편소설 《작은 아씨들》은 발간 후 큰 인기를 얻었고 여자아이들은 모두 그 책을 읽고 네 자매 중 누군가가 되기를 원했으나, 그 작품은 당시 남성 중심의 문학계에서 진지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 작가의 경우 의도적으로 '소녀문학'이나 '가정소설' 같은 분류 방식으로 문학성을 폄하하기도 했다. (권김현영(2020.12.30), "[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작은 아씨들이 그려낸 여자들의 사회", 체널예스) 



어쩌면 처음 나의 망설임도 이런 편견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스스로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성 감독과 여성 작가, 그리고 주인공 3롤이 모두 여성 연기자로 채워진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제작 및 출연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과 '작은 아씨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상상했던 그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철없는 엄마, 세 자매, 여성 제작자들. '뭐 세 자매가 함께 힘을 모아서 헤쳐가는 이야기겠지' 극본은 이러한 기대를 좋은 의미로 모두 배반한다.



2021년 2월 넷플릭스의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일 경우 여성이 리드하거나, 여성이 메인이 되는 캐릭터의 비중이 훨씬 높았으며, 이러한 통계를 종합하였을 때 "카메라 앞의 포용성과 카메라 뒤의 포용성은 지대한 상관관계를 지"니며, "여성 제작자, 창작자의 참여가 곧 콘텐츠 내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라고 했다. (편집실(2022.9), <콘텐츠 업계 여성 고용 비율>, 《N콘텐츠》(25), 한국콘텐츠진흥원.)



<작은 아씨들>의 극본을 쓴 정서경 작가는 "충무로에 작가가 없어졌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말씀드리겠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여름, 추석을 맞아 개봉하고 있다. 이 영화의 극본을 쓴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감독이다. 이 영화들이 어딘가 비슷하다고 느끼실 거다. 제1역할, 제2역할, 제3역할, 제4역할까지 남자 배우다. 5번째, 6번째에서야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여성 배우들이 제가 보기에 민망한 장면을 연기하러 나온다.”(오경민(2022. 9. 4.), "정서경 작가 “충무로에 작가 실종···남성 배우만 나오는 블록버스터 낳아", 경향신문)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가 써낸 극본에 김희연 감독이 합세했다. 



이 극은 세 자매의 돈독한 우애를 굳이 시간을 할애하여 보여주지 않는다. 힘을 합쳐서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장면같이 뻔하지만 언제나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연대의 규칙은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극에는 '굳이 또' 그런 장면이 필요하지 않다.  


이미 대중들이 여러 콘텐츠에서 경험한 여성 연대의 신화가 단단한 토양이 되어 세 자매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서스펜스를 뒷받침한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구태여 강조할 필요가 없다. 세 자매가 돈, 진실, 탈출을 향해 달려가는 길의 지반에는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모두가 손쉽게 그릴 수 있는 기본적인 유대감이 있다. 


이것은 드라마 인물 관계도의 절반 이상의 인물이 여성이기에 당연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과반 이상의 점거는 (남성 신화가 그래왔듯이) 큰 의도 없이도 '여성 인물'의 특징을 '인물'의 특징으로 만들어 준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고 서로를 향하여 투쟁하고 서로의 욕망 대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만 그 누구도 이 서사를 '뭘 모르는 여자들의 치기 어린 질투'로 이해하지 않는다. 지금껏 쌓아 온 여성 서사들이 이러한 깊고 거대한 스릴러 서사를 가능케했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이제 다양한 이야기를 뒷받침할 신화가 만들어졌다. 





ⓒ tvN <작은 아씨들> 공식 홈페이지


▷ 변주를 위한, 변주에 의한, 변주의 서사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아씨들>에서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 된다. 부모가 될 자격이 조금 부족한 부모 밑에서 아빠의 빚을 갚으며 살아가던 세 자매는 전 정권 이인자 자리까지 오른 원기선 장군의 사위이자 서울 시장 경선을 앞두고 있는 변호사 박재상을 비롯한 원령 가 사람들과 깊숙이 엮인다. 



인주는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싱가포르 계좌에 들어 있는 박재상의 불법 비자금 700억, 

안경은 보배 저축은행 사건 당시 박재상 변호사가 맡은 사건 관련자들의 연이은 자살에 대한 진실, 

인혜는 박재상-원상아의 딸 효린의 옆에서 함께 지원받아 떠나는 외국 유학, 


저마다의 욕망으로 세 자매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들과 함께 하게 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베트남의 푸른 난초와 관련한 살인사건의 흐름은 사회부 기자 인경을 통해 풀어지고, 

인주의 회사 동료이자 친구인 화영 언니의 죽음에 대한 비밀은 박재상네 집에서 유학 준비를 위해 지내는 인혜를 통해, 

사라진 비자금 700억의 흐름은 인주를 통해 풀어지는 서사는 언뜻 보면 세 가지 이야기로 나뉘는 듯싶지만, 이들은 정확히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세 자매에게 공유되는 사실보다 시청자에게 먼저 풀리는 이야기가 많으나 답답함을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스토리와 복선으로 시청자를 현혹시키는 매력적이고 탄탄한 서사는 각자의 욕망이 구체화되어 인물에게 주어졌다는 증거가 된다. 


각자의 시점에서 풀리는 이야기를 한곳에 모은 시청자는, 더 이상 다음 화를 기다릴 수 없다. 



한 회 시작부터 엔딩을 추측할 수 없도록 계속해서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 여성들의 서스펜스는 남성 가해자로 인한 여성 피해자만을 그리지도 않고, 여성 서스펜스라며 심리적인 면모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발로 뛰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 교통사고를 당하고서도 피를 흘리며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으며 도망친다. 언제나처럼 피해자인 채 죽는 여자들만 보여주지도 않고 어린아이들을 단지 약한 피해자라는 평면적인 이미지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특히, 권력의 중심인 박재상이 실제로 대면하여 자신의 본 얼굴을 내비칠 때가 세 자매의 막내인 미성년자 인혜와 마주할 때뿐이라는 점도 꽤나 시사할만하다. 한 곳에 건물 두 채를 지을 수 없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박재상의 말에 인혜는 떨지도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감 없이 눈을 굴리며 어색히 웃는 인주와는 전혀 다르다. 



8화 엔딩에서 진화영을 죽인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박재상의 아내, 원기상 장군의 딸로만 지칭되었던 원상아의 존재감이 솟구쳐 올랐고, 그를 향해 인주가 겨누는 총구는 1화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엔딩이다. 


부자 고모할머니 오혜숙은 모든 이들에게 방긋 웃는 아기였던 오인주가 싫었다고 말한다. "아기는 귀여우니까 같이 웃어주지만, 성인이 돼서 네가 그렇게 웃으면 세상은 네 뺨을 때려."


8화의 인주는 더 이상 '그렇게' 웃지 않는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 가는 방법, 더 이상 그렇게 웃지 않는 인주는 알아냈을까? 인경과 인혜는, 그 방법을 알 수 있을까, 안다고 행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결말이 전혀 예상되지 않는 현재 지점에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앞으로 4화만을 남겨두고 있다. 가난에 대한 편견 섞인 대사,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유발했다고 말해도, 자체로도 불편할 수 있다. 철없는 엄마 때문에 배로 고생하는 딸들의 모습 화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로 안 보기에는 꽤나 아쉬운 작품이다. 


이번 주 토요일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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