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후원하는 2023 서울국제도서전은 6월 18일 폐막했다.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이라는 주제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불평등, 환경, 소외 등의 문제에 주목하며, ‘사라지다, 저항하다, 가속하다, 교차하다, 가능하다’라는 다섯 개의 동사를 중심으로 600권의 도서를 큐레이션 한 주제전을 열었던 서울국제도서전이지만 개막 첫날부터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도 논란에 휘말렸다.
도서전의 얼굴이라는 2023 서울국제도서전의 홍보대사에 오정희 작가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시작되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예술가들의 명단이 작성되었고,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예술가들은 창작지원기금이 끊기거나 공연에서 퇴출당하는 등의 위협을 당했으며, 당시 오정희 작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는 최소 30명이 넘는 지원 대상자를 임의로 배제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에는 여전히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의혹을 받는 오정희 작가가 홍보대사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반대 의견이 전달되었으나 묵살되었고, 16일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오정희 작가의 홍보대사 위촉은 서울 국제도서전 운영팀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사에 따라 선정되었으며, 문체부와 출협이 개입하지 않았기에 책임이 없다며 회피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오정희 작가의 홍보대사 위촉에 항의하던 문화예술인들이, 개막일인 14일 김건희 여사가 개막식 축사를 하는 도중 경호원들에 의해 팔다리가 잡힌 채 끌려 나가 강제로 퇴출당하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송경동 시인과 정보라 작가 등 10명이 자신들의 축제에서 강제로 쫓겨난 것이다. 송경동 시인은 자신을 끌고 나온 이유를 물었고 대통령경호법 위반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김건희 여사의 행사장으로 진입하려는 시도조차 한 적 없다.
또한 김건희 여사의 축사가 진행되는 동안 ‘독서신문’, ‘뉴스페이퍼’ 등의 문학 및 출판계 기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문학계 언론인 뉴스페이퍼는 당사 SNS에 “김건희 씨가 왔다는 이유로 기자들 진입도 허가되지 않고 있습니다. 허가된 기자만 진입 가능하다며 문학기자들도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들은 출협이 배부한 프레스증을 내밀었으나 김건희 여사의 방문을 이유로 출입이 거절당한 것이다. 김건희 여사는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오정희 작가의 홍보대사 선정을 항의하는 예술인이 쫓겨난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퀴어 페미니즘 서적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 움직씨 부스에 방문해 레즈비언 퀴어 작가 앨리슨 벡델의 《초인적 힘의 비밀》을 포함한 책 6권을 구매했다. 이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오정희 사태와 대통령 경호실의 폭력적 행위가 SNS를 통해 밝혀지며, 황정은 작가, 오은 시인 등의 여러 참가자가 불참 의사를 밝혔으며, 18일 폐막식 당시 홍보대사들의 강연도 논란으로 인하여 취소되었다. 오정희 작가는 스스로 홍보대사를 사퇴한다고 밝혔으나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황정은 작가는 “도서전 당사자이기도 한 작가들이 대통령경호법을 이유로 쫓겨난 자리에서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는 주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제게는 없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는 5일 동안 방문객은 13만 명으로 작년에 비해 훨씬 높은 수를 기록했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책임이 있는 홍보대사 사퇴를 요구한 시인의 팔다리를 붙잡고 현장에서 질질 끌어내는 현장 사진과, ‘인간, 비인간, 소외, 불평등, 동물권, 젠더, 차별’을 주제로 큐레이션 되고 새로운 예쁜 표지로 얼굴을 갈아 끼운 책들이 전시된 공간이 교차한다.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는 슬로건이 어정쩡해진 이유는 이곳에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학술 가치가 있는 다양한 책을 선정하여 도서관에 배포하는 세종도서 선정 사업에 개편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세종도서 선정사업을 미루다가, 22일이 되어서야 사업을 진행한다는 공고를 발표했다. 마포구청장이 바뀐 후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청년 일자리 사업 등으로 일부 용도를 변경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경의선 책거리는 ‘레드로드 관광특구’로 조성하는 계획으로 곧 사라진다고 한다.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은 작은 도서관을 축소 및 폐관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의견을 SNS에 작성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다. 번역원 예산이 삭감된 것 같다는 이유로 외국 출판사와 번역 계약이 해지된 작가의 말이 들리고 여전히 성인들의 독서량은 처참하다.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김건희 여사는 개막식 축사에서 “우리의 도서가 전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고 세계 출판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저 역시 노력하겠다”라고 말하였으나, 도서관을 줄이고 출판문화진흥센터를 일자리센터로 바꾸고 출판계 예산을 삭감하며 과연 어떻게 세계 출판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팬데믹 이후 실내 마스크 착용이 권고로 변화면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출판계 행사인 서울국제도서전을 기대한 사람들이 많다. 그 결과 올해 방문자수도, 직접 방문하여 확인한 행사장 내 밀집도도 지금까지의 도서전 중 가장 많았던 듯하다. 그러나 개막식 때부터 연이은 논란들은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한 내가 이 공간을 어떻게 즐겨야 하나, 즐겨도 되는가라는 고민을 얹어준다. 언제나 출판계는 위기라고 하지만 이번 위기는 묵직하다. 출판계의 중심지 마포구에서 시작한 이 위기는 뽑을 사람이 없어 1년 내내 면접을 보는 것 같다는 종사자들의 한탄으로 이어지고, 이는 구인 공고가 이렇게까지 없었던 적이 없다는 출판계 구직자들의 한숨으로 이어진다.
2017년부터 서울국제도서전을 (한 회 빼고) 거의 매번 방문하던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년도의 도서전의 목적과 실제 행위의 어긋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큰 규모의 대형서점이 마땅치 않은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서울국제도서전은 나에게 있어서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된다. 좋아하는 출판사 부스에서 SNS나 온라인 서점에서 본 책들의 실물을 확인하고, 학술서를 출간하는 부스에 가서 전혀 상상도 못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을 살피고 서점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출판사들에서 나오는 과학 관련 잡지를 보고 설레고 흥분하고 즐기면서도, 인간을 넘어선 비인간의 시대에서 공생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사유가 널린 책들의 사이를 걷다가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는 문구의 첫 번째 ‘인간’과 두 번째 ‘인간’이 전혀 다른 의미라는 걸 생각한다. 그리고 첫 번째 ‘인간’에도 속하지 못하는 생략된 단계의 인간을 떠올린다.
비인간, (생략된 단계의 인간이 배제된)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박근혜 정부에 반대되는 입장의 창작물을 만들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예술인들은 이 세 단계의 인간 중 어떤 인간에 속할까?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인간을 넘지 못한 단수의 인간과, 인간 밑의 인간과, 생략된 단계의 인간과, 배제된 인간들이 있었다. 무엇이 무엇을 넘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무엇을 넘었을 때의 마주하는 비인간은 무엇인가. 이번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 무수한 빈칸 ‘무엇’에 대한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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