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지'에서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불의 섬'까지
심완선 평론가의 《우리는 SF를 사랑해》가 출간되기 전, 민음사에서는 6명의 SF 작가의 인터뷰를 뉴스레터 형식으로 공개했다. 그중 정소연 작가의 인터뷰 답변을 인용한다.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할 때 현실성이 있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눌린 자국이 있는 인물이 된다고 생각해요. 어떨 때는 흔적이고 어떨 때는 꽉 닫힌 모양이죠. 억눌린 지점이 있는 인물은 여성일 때 조금 더 자연스럽달까, 삶 전반에서 눌린 지점을 만들어 내기가 비교적 쉬워요. 왜냐하면 그런 여성이 사회 곳곳에 있으니까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있잖아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어딜 가든 눌리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고, 더 많이 이야기됐으면 해요.
조애나 러스를 인용하여 여성 주인공에게 부과될 수 있는 신화와 여성 주인공이 할 수 없는 신화를 이야기했다. 이때의 여성 주인공의 새로운 신화는 이곳에서 ‘눌린 자국’이라는 어구로 설명된다. 하나의 합성어가 된 듯이 읽히는 ‘매 맞는 아내’는 얼굴의 멍 자국을 지우는 화장법을 검색하고, 눈두덩에 보라색 아이섀도를 바른다. 그는 가정폭력에 눌린다.
면접장에서 남성 지원자에게는 묻지 않는 질문을 받는 지원자가 있다. 애인의 여부를 묻고는 결혼 계획이 있다면 여자가 일할 필요가 뭐가 있어, 출산 계획이 있으면 금방 그만두겠네, 출산 계획이 없다면 요즘 세상에 이기적으로 애를 안 낳는다는 도 넘는 발언, 혹은 예쁘니까 제로투를 춰보라는 전주 신용협동조합(신협)의 무례한 요구를 받는 여성 지원자는 눌린다.
남성과 남성, 여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각각이 일대일로 존재하는 상황을 연출할 때, 여성과 남성의 일대일 대면 상황은 연출자가 특별히 개입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젠더관계를 통해 위계질서를 파악한다. 눌린 자국은 이렇게 가정과 사회를, 소설과 현실을 넘나든다. 사회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눌린 자국을 안다. 알지만 보지 못한다.
위에서도 옆에서도 계속 무언가가 그들을 누른다. 볼이 패이고 눈이 떠지지 않고 팔 하나 움직이기 어렵다. 왜 그렇게 여기저기서 누르는지, 답답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 무엇이 누르는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몸엔 언제나 눌린 자국과 모양이 선명하다. 그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누군가가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보이지 않는 ‘나를 누르는 것’에게 도끼를 휘두른다. 사람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혼자서 사방에 도끼를 휘두르는 미친 여자다.
뮤지컬 〈리지〉는 여성 4인극의 락 뮤지컬으로, 주인공인 리지 보든, 리지의 언니 엠마 보든, 리지의 소꿉친구이자 사랑하는 사이인 앨리스 러셀, 그리고 보든가의 하녀 브리짓이 등장한다. 리지는 친부에 의해 성폭행당하지만 집을 떠날 수 없어 괴로워한다. 리지는 가정 내 성범죄 피해자로 폐쇄적인 가정 내에서 끊임없이 눌린다. 그나마 헛간에서 새를 돌보거나 친구인 앨리스와 만날 때 밀린 숨을 몰아쉬지만 앨리스와의 관계를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렵다. 이때 친부의 유언장 내용에서 유산 상속자의 이름이 새엄마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안 엠마는 그 사항을 해결하겠다며 집을 비우고 음울한 저택에는 리지 홀로 남는다.
‘리지 보든 도끼로 엄마한테 마흔 번
아빠한텐 아니야 마흔하고 한 번 더’
부모를 도끼로 내리쳐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은 리지는 재판장에 서지만 오히려 눌린 자국은 리지를 돕는다. 1892년의 남성 재판관들은 어린 여자가 누군가를 살해할 능력이 없다고, 그것도 부모를 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믿었다. 너무나도 충실히 믿어서 자신들이 그 사실을 믿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리지가 정말 그의 부모를 도끼로 내리쳐 죽였는지 이제는 알 수 없지만 리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산을 노리고 괴팍한 구두쇠인 친부와 결혼한 새엄마, 언제나 저택의 문이 닫혀있는 폐쇄적인 가정, 계속되는 친부의 성폭행과 억압, 그리고 잠시 집을 비운 언니 엠마, 리지가 앨리스에게 가지는 사회에서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관계. 리지는 모든 것에 눌려 간신히 살아간다. 리지는 이 모든 ‘누름’에 비명과 신경성 쇠약으로 반응한다. 이때의 비명은 말이 아닌, 락 장르의 거친 보컬이 된다. 리지의 비명을 넘어선 포효를 듣는 관객들은 리지의 울부짖음을 저항으로 들을 수 없다. 리지의 목소리는 사람의 발에 밟힌 작은 동물이 간신히 내는 마지막 비명이다. 그러므로 뮤지컬 〈리지〉의 도끼는 자식이 부모를 죽인 친족살해의 끔찍한 살해 도구가 아니다. 뮤지컬 〈리지〉의 도끼는 해방이다.
리지는 자신이 돌보던 새들이 머리가 잘린 채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도끼를 든다. 그리고 낮잠을 자는 친부를 내리친다.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고는 미친 여자처럼 친부의 몸을 계속 내리찍는다. 이어지는 2부에서 리지의 의상은 1890년대의 드레스가 아닌 마치 락스타를 연상케 하는 검은색 의상이다. 1부에서 신경성 쇠약에 시달리고 간신히 비명으로 생명을 연장하던 리지는 없다. 리지는 서양 배를 베어 물면서 여유롭게 등장한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앵콜이 끝나고 배우들은 도끼를 무대 가운데 있는 홈에 끼워둔 채 퇴장한다. 도끼의 손잡이는 이제 리지가 아닌 우리에게 있다. 리지는 자신의 도끼를 우리에게 건네준다. 이때 우리가 내리찍어야 할 것은 당연히 부모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내리찍어야 할까? 미치고 광기 어린 리지가 자신의 아빠를 죽였듯이, 우리는 미치고 광기 어린 모습으로 우리를 누르는 것을 도끼로 내리찍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도끼는 해방의 도구가 된다.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불의 섬〉에는 여성 종사자가 많지 않아 여성혐오적 편견이 존재하는 6개의 직업군이 등장한다. 소방관, 군인, 경호원, 스턴트, 운동선수, 경찰이다. 섬에서 생존하며 다른 팀의 기지의 깃발을 빼앗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제 몸처럼 도끼를 들고 문고리를 내리치고, 창문에 덧댄 나무판자를 내리치고, 의리 게임으로 진행된 장작을 내리친다. 출연자들이 도끼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SNS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도끼를 하나씩 사야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돌아다녔다.
“제가 그럼 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할게요. 포기하지 마세요. 체제는 뒤집으라고 있는 거예요. 체격은 키울 수 없어도 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너무 멋진 일을 하고 계시는 전국의 소방관분들, 그리고 금녀의 구역에 도전하시는 여성분들 다 힘내세요. 변화시키고 개혁하세요. 저도 항상 먼저 뛰어들겠습니다.”
출처 : 플랫, 금녀의 구역은 없다, ‘편견’을 깨부순 ‘사이렌’ 김현아 소방장, 2023.06.27.
소방팀의 리더 김현아 소방관은 경향신문 플랫팀과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그냥 사람을 훌쩍 업고 나와야 했다고, 그러니 자신이 일하는 순간 내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내야 한다고. 김현아 소방관은 2018년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여성 소방관 최초로 출전하여 남성 소방관들과 함께 대등한 능력을 보이며 겨루었으나 때아닌 악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자신 이후로 소방기술경연대회에 매번 여성 소방관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원동력이 되었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고 말했다.
딱딱하고 능글거리는 말투로, 배려도 하지 않고, 팀의 이익과 자신의 목표를 모든 것의 우선순위로 둔다. 웃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벗고, 갯벌 같은 건 평지인 것처럼 뛰어간다. 말 좀 예쁘게 하고, 남에게 배려하고, 남의 기분을 살피고, 언제나 다리를 모으고, 몸이 보이는 것에 계속 신경을 쓰고, 뛰지 말고 걸어 다니고, 여자애가 뭐 그렇게 정신없니, 힘이 세니, 드세니, 남자 같니. 내면의 무슨 소리가 계속해서 그들을 누르려고 한다. 그러나 〈사이렌: 불의 섬〉의 출연자들은 모두 여성이고, 차이점은 직업뿐이다.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의 반대항으로서 존재한다고 했을 때, 기준점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반대항으로서 여성도 사라진다. ‘여성’인 인간만이 보일 뿐이다. 사회의 무언가가 이들을 누르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적어도 섬 안에서는 이들의 눌린 자국은 흐려진다.
‘체제는 뒤집으라고 있는 거예요.’
체제를 뒤집은 사람들이, 직업에서 여성혐오에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가는 사람이 도끼를 들어서 내리치는 것은 그러니 편협한 사고에 갇힌 여성혐오와 고정관념이다. 출연자들은 혼자서 도끼로 장작을 몇십 개를 패고는 웃통을 벗고는 환호한다. 한 번에 장작을 가르지 못해도, 경쟁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자신의 힘이 조금은 약한 것 같아도, 자신의 뒤를 이어야 할 동료들을 생각하고는 집중하며 다시 도끼를 들어 올려 내리친다.
그들에게도 눌린 자국이 있다. 형사임에도 아가씨라는 호칭을 듣고, 불이 난 현장에 여자 둘이 왔냐는 핍박을 받고, 여자가 무슨 경호냐는 비아냥거림과, 여군은 병력에 도움 안 된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듣는다. 그러나 2023년의 이들은 도끼를 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장작을 팬다. 자신의 뒷사람을, 동료를, 자신의 뒤를 이어 계속해서 ‘금녀의 구역’에 도전할 도전자들을 위해 자신의 몫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몫을 팬다. 도끼질 한 번에 장작은 쩍쩍 갈라진다.
더 이상 눌린 자국을 가진 채 도끼를 든 여자는 미치거나 광기에 어리거나 신경쇠약을 겪는 이상한 여자가 아니다. 이제는 눌린 자국이 있는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향해 도끼를 휘둘러야 하는지 안다. 그리고 자신이 왜 도끼를 휘둘러야 하는지도 안다. 그러니까 도끼의 날은 정확하게 ‘자신을 누른 것’을 향해 간다.
이제 누가 도끼를 든 여자를 미쳤다고 하는가?
다들 도끼를 하나씩 가지고 싶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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