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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Apr 01. 2022

프레임이 '인터넷 밈'을 만났을 때

#밈

[주간자유] 2022. 03월 주제 2 #밈

인터넷 밈 전쟁의 시대



미국 애니메이션〈보이즈 클럽〉에는 개구리 페페가 있다. 이 캐릭터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밈meme으로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 캐릭터 창시자인 맷 퓨리는 제 손으로 페페의 장례식을 치른다. 다큐멘터리〈밈 전쟁 :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어떻게 '4chan'라는 인셀 사이트 사용자들 의하여 혐오의 상징이 되었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대안 우파의 혐오 정치에 앞장서게 되었으며, 나치, 인종차별주의자와 여성 혐오자의 대표가 되어 혐오 상징물 데이터베이스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단지 애니매이션의 주인공이었을 뿐인 페페는 어쩌다 혐오의 상징이 되었는가? 그리고 이 흐름을 단지 리처드 도킨스의 '밈'의 정의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밈과 인터넷 밈


밈은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등장한다.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함축하는 자가 복제자"(남순예, 2015)라는 정의를 가진 밈은 문화를 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이는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복사될 수 있는 모든 정보 값을 통틀어 칭하는 단어가 되었고 현재 2022년도에는 '인터넷 밈'이라는 단어로 주로 사용되며 문화 요소를 모방하여 전파하는 문화적 진화를 이르는 용어에서 참여 문화 형성과 모방 과정에 창의성이 더해지는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박광길, 2020)


현재 '밈 정치'라는 대선 정국에 심심찮게 등장하게 되었다. 22년 대선 후보들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흔히 사용되는 짤방에 합성되어 곳곳을 돌아다녔다. 흔히 '인터넷 밈'이라고 지칭되는 것들은 재미와 유희 거리에서 정치까지 발을 붙이게 되었다. 특히 명치에 손을 얹고 표정으로 소화불량의 불편함과 소화의 상쾌함을 표현하는 한 소화제 광고의 캡처는 인터넷 밈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 밈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을 설명하는 짤로 변형되어 SNS에 게재되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탈모제 광고를 따라 하며 대선 주자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친숙함과 유쾌함을 무기로 다가갔다.


'인터넷 밈'은 단지 사진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튜브 및 1인 SNS의 발달로 사진에 국한되어 있던 인터넷 밈은 텍스트, 사진, 영상, 음성 등 형태에 구애받지 않은 정보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시공간의 제약 없는 인터넷이라는 공간 안에서 '인터넷 밈'은 복제 및 모방의 단위인 밈과는 달리 복제뿐 아니라 변형, 왜곡 등의 인간의 창의성과 개성이 첨가되며 복사되어 배포되는 문화 현상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인터넷 밈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문화의 아이디어, 행동, 스타일이 이용자들의 창의성에 의해 변형되어 이미지 또는 영상의 형태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박광길, 2020)한다.


인터넷 유행어를 사용하는 정치인은 새롭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하다. 인터넷의 폐쇄적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유래로 인하여 같은 은어를 사용하는 존재들에게 느끼는 친숙함인 것이다.


인터넷 밈 확산의 부정적인 측면을 고민하였을 때, 소통의 단절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박광길, 2020) 이는 세대 간의 단절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인터넷 접근성의 여부에 따른 세대 내 단절을 포함한다. 그러나 사실 인터넷 밈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은 '소통의 단절'이 아니다. 세대 내 단절? 조금 더 자세히 보자.


개구리 페페는 '4chan'이라는 인셀들의 사이트에서 자신들을 빗대어 '슬픈 페페'를 사용하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페페가 인셀들의 폐쇄적인 사이트를 넘어 대중화되기 시작하자, 이들은 자신들만의 '은어'를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대중화되지 못하도록, 그러니 직접 밈의 창작자인 자신들 말고 다른 이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이트 이용자들은 페페로 온갖 혐오를 표현했다. 나치 문양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페페, 테러리스트의 모습을 하며 총을 겨누는 페페, 인종차별을 하는 페페의 그림들을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더 이상 페페는 맷 퓨리가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었다. 혐오는 아주 자극적이다. 검열 없이 퍼져나가는 혐오들은 창작자인 맷 퓨리조차 막을 수 없었다. 이미 그의 페페와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페페의 짤 사이에 간극을 메꿀 수 없었다.


혐오, 혐오가 기반이 되었을 때 인터넷 밈의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유행'에서 멈추지 않는다.



#프레임과 인터넷 밈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왜 항상 진보는 실패하는가를 프레임 이론에 따라 설명하는 책이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두뇌는 그 단어와 결부된 프레임이 작동"하며 우리의 두뇌는 논리적으로 사실과 인과관계를 파악하는듯 하지만 사실을 우리가 지닌 프레임에 맞는 사실만을 받아들인다. 진보가 실패하는 이유는 보수의 언어, 즉 보수의 프레임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보가 이기려면, 보수의 프레임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만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뇌는 부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코끼리다.


보수당의 정치인 A가 있고 진보당의 정치인 B가 있다. A는 B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B는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부정을 이해할 수 없기에  B는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님을 설명함으로써 스스로와 '거짓말'이라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계속해서 덧씌운다.


 "B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남을까? B와 거짓말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뿐이다. "B는 진실만을 말한다"라고 했다면 어떨까? 그러나 이미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최근 2022년도 대선에서는 막바지에 아주 새로운 프레임이 떠올랐다. '1번남과 2번남'이라는 프레임이다. 다른 공약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혐오를 위해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일부 남성들에게 갑자기 이름이 생겨났다.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남성들의 사진과 윤석열을 지지하는 남성의 사진을 비교한 사진이 떠돌았고, 2번남이라는 프레임 아래에는 '열등감, 혐오, 인셀, 사회부적응' 등의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그러니 아무도 2번남이 되고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2번남이라는 프레임은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2번남이라는 프레임에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달라붙음과 동시에 1번남의 프레임에는 각종 긍정적인 이미지가 뒤따랐다. 각종 진보 스피커를 주장해온 남자들은 "2번남이 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정치권에서 시작되었는가?


아니다. 이 프레임은 인터넷 여초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 이 프레임의 시작은 '인터넷 밈'이었다. 인터넷 밈은 효과적으로 정치 프레임을 삼켰다. 이제 1번남과 2번남이라는 정치 프레임은 인터넷 밈과 구별할 수 없다. 이 분열의 원인이 여초 커뮤니티에 있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세대 안 혐오 정서를 이용하여 성별을 가르며 공약을 내세워 지지를 얻고자 한 대선 후보자들에게 있지 않을까.


지지 당사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공약을 내는 후보자를, 여성 가족부를 폐지하고 성범죄 무고죄를 신설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지하는 자들은 손쉽게 2번남이 되었다. 그러니 이들은 대선에서 성공하였으나 '프레임' 전쟁에서는 패배한 것이다.


혐오를 위한 혐오를 반대하기 위하여 나온 인터넷 밈이 정치 프레임이 되었다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간단하다, 단지 혐오를 위한 인터넷 밈을 정치 프레임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 그러했다. 혐오의 대명사가 된 페페의 이미지에 평등의 가치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과 트럼프 지지자들이 결합했다. 트럼프는 대선에서 페페의 이미지가 가진 혐오를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 보도자료에 여성 혐오적 표현을 사용하거나 여성 혐오자들이 주장하는 여성가족부 폐지나 성범죄 피해자 중 무고죄로 기소된 비율이 0.7%(2019년), 그러니 단 1%이 되지 않는데도 무고죄를 신설하겠다는 등 여성 혐오적인 공약으로 흔히 기사에서 '이대남'으로 정치 주체라고 판단된 20대 남성들을 끌어들이려고 한 것과 같다.


트럼프와 윤석열의 공통점은 혐오주의를 대선으로 가져왔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트럼프는 밈 정치에서조차 승리하였으나 윤석열은 밈 정치에서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대통령 선거의 당락을 결정한 표 차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22년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무효표 비율보다도 낮은 0.73% 차로 윤석열이 당선된 것이다.


역대 최저의 득표율 차로 '분열된 대한민국'이라는 분석기사가 쏟아지며, 이후 어떻게 통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와중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인터넷 밈으로 유행시킨 이들은 '개딸'이라는 또 새로운 인터넷 밈을 가져왔다. tvn 드라마 응답하다 시리즈의 여자 주인공을 '성동일의 개딸들'이라고 이야기하며 드라마 인물을 설명하던 이 단어가, '무지성 지지'를 외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인터넷 밈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인터넷 밈은 이제 다시 정치 프레임이 되었고 각종 정치부 기사에서 유행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혐오를 반대하기 위한 인터넷 밈과 혐오를 위한 인터넷 밈이 격렬하게 다투고 있다. 이미 인터넷은 '프레임 전쟁'을 넘어선 '밈 전쟁'이다. 프레임 전쟁이 재미없고 진지하고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늙은 정치의 싸움이었다면 인터넷 밈 전쟁은 그보다 새롭고 유쾌하다. 재미있고 친숙한 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약이 없는 만큼 증오와 혐오의 가치를 덮어쓰는 것도 쉽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퍼져나가는 인터넷 밈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인터넷 밈은 재밌다


'인터넷 밈'은 재미있는 것이다. 애초에 살아남는 인터넷 밈은 어떠한 가치를 담기 전에 재미가 없다면 사장된다.


이따금 '재미'는 모든 가치의 위에 왕처럼 군림한다. 자신의 즐거움이 남을 휘두르거나 혐오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해학과 풍자는 아주 효과적이며 우아한,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특권 계층을 비판하기 위해 본질을 비비 꼬아 유머로 재탄생시키는 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그 칼날이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인터넷 밈은 유행을 넘어서 여론의 흐름을 관장하기도 하며, 정치 프레임까지 관여한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


인터넷 밈은 아주 여러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인터넷 사용자가 1차 창작자인 경우, 어느 콘텐츠의 일부가 맥락적으로 혹은 탈맥락적으로 유행하는 경우. 혹은 의도를 가지고 유행이 되는 경우까지.


인터넷 밈은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간이 존재하는 한 증식한다. 자의적으로 장되는 한이 있어도, 타의적으로 막기란 불가능하다. 억압은 오히려 확산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 밈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소비자이자 창작자가 된다. 소비와 재생산, 변형은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진다.


인터넷 밈 자체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일 수는 없다. 유희 거리를 찾는 일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재미 안에 숨은 의도를 찾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혹은 이러한 인터넷 밈이 확산되면 어떤 가치가 긍정될 것이며, 어떤 계층이 억압 받을 것이며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를, 한 번쯤을 고민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인터넷 밈 안에서 '재미'만을 찾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인터넷 밈'은 사회 문화 전반뿐 아니라 정치의 영역까지 침투했다.


맷 퓨리는 페페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러나 혐오 정서가 덧씌워진 페페의 죽음을 슬퍼하던 사람들은 페페를 살리고자 했고, 이 흐름은 지구 반대편의 홍콩 민주화 시위대에게까지 향했다.


역설적이게도 혐오주의의 대표였던 페페는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시위대의 사람들은 페페의 인형을 들거나 그림이나 사진을 들며 자유를 외쳤다.


페페는 수단이다. 인터넷 밈은 무가치의 수단이다. 그 안엔 무엇이든 들어가 목적이 될 수 있다. 의도가 없었다는 변명이 더 이상 통하도록 둘 순 없다. 그러니 더 이상 무지가 무죄가 되긴 힘들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인터넷 밈을 소비하는 개인들이 한 번씩만이라도 인터넷 밈을 메타적으로 반추하는 시간이 필요해진 시기가 왔다. 진실이 가려진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어떤 가치들은 유머라는 아주 좋은 목적으로 교묘히 숨어 들어온다. 모두가 모든 것을 골라낼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은, 한 번씩은, 한 번이라도.


이 인터넷 밈이 유행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1번남과 2번남이라는 인터넷 밈이 유행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일.

'오또케'라는 혐오적인 밈이 사용되는 사회를 상상하는 일.


잘잘못을 따질 수 없을 만큼 현대사회는 복잡해졌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건 나는 적어도, 나만은 통제할 수 있다. 어렵지 않다.


내가 이 밈을 보고 즐기는 행위로 피해받는 이가 있을까?


이 짧은 질문이면 된다.









참고문헌

1.「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아서 존스,  2020

2. 남순예, 「밈의 과정철학적 이해」, 한국화이트헤드학회. 한국화이트헤드연구 31권 0호, 2015. 12. page 77-101.

3. 박광길, 「인터넷 밈의 언어적 성격 고찰」, 인문과학연구,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제 66집, page 5-26.

4.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와이즈베리, 2015.

5. 플랫팀(2022.03.03),  "'오또케'와 '페페'의 공통점... 밈 정치는 어떻게 주류가 되었나".

6. 동아일보(2022.02.23), "'밈'타고 진화하는 이미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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