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무게

책임이 필요해

by Ubermensch






우리는 종종 감정의 투사를 겪곤 한다. 여기서 종종 오해나 오독이 발생하고, 그럴때면 나는 설명의 의무를 느낀다. 감성적, 감정적이라는 말은 때로 좀 과하다거나 성숙하지 못하다는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직함, 순수함,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치가 높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그것은 일정 부분 사회적 지능 항목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얕게 아는 일반적인 사람들로부터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차갑다는 피드백을 꽤 받는 편이다. 사실 그것은 내가 관계에 얽혀 귀찮아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도록 의도하는 방향이 일면 있기도 하고, 스스로의 감정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므로 되도록 표현을 억제하고 자체적으로 소화하려는 편이다. 아주 드물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나는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 고통과 관련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때는, 그것을 이미 통과하고 소화한 이후 정리 개념으로 꺼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보다 많이 만나게 된다. 내 문제를 본인의 것처럼 대신 느끼며 어떤 해결책을 주고 싶어서 앓아버리는 사람. 지금의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데도 상상속 내 고통에 공명하며 울어버리는 사람. 나를 어떤 구조나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 뭐라도 돕고 싶어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마주하면 나는 마음이 무거워 진다. 그래서 애를 써서 설명을 해보지만 내 의도대로 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말 오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일정 부분은 어떤 투사가 있지 않겠냐고 묻고 싶다.


기본적으로 나는 나의 고통, 나의 감정, 나의 문제는 나의 책임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것을 타인에게 지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고 현실적인 도움을 바란 적도 없다. 내게 와닿는 그 따스하다 못해 뜨거운 마음들은 충분히 알고 눈물겹게 감사하지만, 그것이 진정 내게 필요한 것이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그들 각자의 어떤 욕망이나 환상이나 투사의 필터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구조자에 대한 구조욕망, 상대가 연약해 보이므로 어떤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는 환상, 스스로의 어지러운 마음을 상대에게서 대신 읽어버리는 투사.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그 시선과 감정들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는 건 정말 괜찮을 때 괜찮아서다. 내가 늘상 행복하고 고통스럽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내가 나의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고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질 줄 아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것도 고요하고 차분하게. 그러니까 남들이 대신해서 요란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걸 바라지도 않고.


사람도 결국은 어떤 면에서 추상적 의미의 텍스트로 볼 수 있는 까닭에, 그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주체에 따라 다양하게 독해될 수 있다. 각자의 사고방식, 감정 처리 방식,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는 텍스트가 오독하기 쉬운 면을 여럿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공들여 설명한다.


가끔 사랑한다는 이유로 본인 감정의 무게를 일방적으로 지우는 사람들이 있다.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의 표현은 상대방에게 짐이고, 부담이고, 죄책감의 무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본인이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전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그것을 사랑 등 보기 좋은 명목으로 포장해서 상대에게 전가하는 행위는 자칫 이기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조절에 실패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기의 어떤 특정한 상황은 본인 의지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늘 조심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