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

존재론적 입장문

by Ubermensch






비어있다. 커다랗게 텅 빈 건 아니고. 작게 비어있다. 그 빈 공간은 메꿔진 적이 없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사랑과 관심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버거움을 느끼고 공급의 중단을 요청하거나 애써 모른 척 회피하는 순간도 많다. 때로는 내게 퍼부어지는 그 감정의 방향이나 순도에 의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게 나를 위한 것인지 본인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어떤 왜곡이 있지는 않은지. 물론 순수하게 나를 위한 것도 있다. 그것은 일부 흡수된다. 전부가 아닌 일부인게 약간 문제다. 공간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다. 그곳에 술도 부어보고 자극적인 음식도 채워보고 폭신한 인형이나 담요를 끌어안아 덮어보기도 한다. 그것은 감각적 자극으로 일시적 위안이나 도피처로만 기능할 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알고 있다.


빈 공간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꼭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으로 추측한다. 누구나 어느 시점 그럴 수 있다. 물론 좋은 것들로 꽉 차고 넘쳐 줄줄 흐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특별히 부럽진 않다. 공간을 두는 것은 내 의지이자 선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누군가의 눈에 띄어버린 이 빈 공간은 때때로 채워주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 버리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문제다. 타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타인의 무엇이 약간 깃들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어느 정도 얼마큼 수용할 지에 대한 것은 내 의지이자 내 선택이다.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문제이기도 하고.


그 공간을 채우고 싶은지 비워두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때론 채우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그래야 사회 보편적인 관점에서, 정신병리학적 관점에서, 편안하게 느낄 것 같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균형과 완전함을 추구하므로, 어딘가 균열이 있는 틈을 보면 본능적으로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균열과 불안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빈 공간을 안고 있는 사람이, 꼭 해결되어야만 하는 대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그것을 인지하고 관리하며 타인에게 전가하는 식의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고 여긴다. 그 위태로움이 어쩌면 그 사람의 존재와 작동 방식이자 삶을 살아가는 기원이라고도 믿는 까닭이다. 완벽하고 완전한 상태는 그로써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갈 유인이 없다. 고통과 결핍이 깊이를 만든다. 끝도 없는 심연까지 하염없이 깊어질 필요까진 없다 하더라도, 세상 모두가 정갈하게 각진 골드바처럼 티 없이 매끄럽고 완벽하게 빛날 필요가 있는가 싶은 개인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딘가 금가고 해지고 절름거리는 존재에게 한번 더 눈길을 주게 된다. 연약하고 안쓰러운 것들을 유독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연약하고 금 간 채 해져서 절름거리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면 답은 부정이다.


나는 그저 발끝으로 선 부레부레(bourrée bourrée) 걸음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남보기에 얼핏 그 걸음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위태로워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긴 공연의 일부일 뿐이다. 요즘 나는 그랑 줴떼(Grand jeté)를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