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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생크림 케이크

달콤한 행복의 맛

by Ubermensch





일반적인 여자들은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고 한다.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달콤한 쿠키, 빵, 케이크, 구움 과자 같은 베이커리류를 몹시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단 음식에 별 관심이 없다. 맵거나 짜거나 시거나 쓴 음식을 선호한다. 해장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물이 있는 음식도. 달고 느끼한 음식은 몇 입만 먹어도 쉽게 질려버린다. 하지만 디저트계에 대한 내 무관심에서 딸기 생크림 케이크만은 예외다. 새하얗게 담백한 생크림과 폭신한 시트, 새빨갛게 상큼한 딸기의 과즙이 팡 터지며 한데 어우러지는 그 맛은 딸기 철에만 즐길 수 있는 달콤한 사치다. 나는 그런 사치를 스스로 부리지 못해서 누가 사줘야만 누릴 수 있다. 전에 고소한 정수리가 온 동네 방네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참 많이 사줬다. 어느 날 집 현관문을 열면 동네 유명 빵집의 딸기 생크림 조각 케이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날도 있었다.


지난 월요일, 내가 80세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치매 할머니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세상의 관점에서) 도끼를 휘둘러 구속된 피의자를 조사했던 날 우리 부장님은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판을 사주셨다. 옆방 523호 부장님, 우리 부장님, 523호 부장님 소속 앞자리 계장님, 겸방 실무관님,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다섯이 524호에 모여 그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난 오늘 목요일은 우리 다섯 명이 매주 점심을 함께하는 날이다. 맛있는 갈비찜을 먹었다. 우리 부장님은 또 케이크를 사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신이 나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반복해서 말했다. 부장님이 통신사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투썸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나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전시되어 있는 유리에 손을 대고 이거요 이거요 했다. 우리는 3일 만에 또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나누어 먹게 됐다. 524호에서.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종종 혼자 있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그러면 지하에 주차해 둔 내 차로 간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앞자리 계장님께 전화가 온다. 작은아버지가 찾으셔. 나는 호다닥 돌아와서 525호 부장님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저 찾으셨나요?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신가요? 하고 묻는다. 부장님은 별 일 아냐. 하시고서는, 이내 아뜨거 아뜨거 하며 524호 내 자리로 티팟을 들고 오신다. 찾은 이유는 이거였어. 내가 오전 내내 다이소 촛불을 세 개나 써가며 우린 차를 따라주려고 했지. 나는 머그컵을 냉큼 내밀어 많이 주세요, 하며 받아먹는다. 부장님, 저는 참 사랑받는 수사관이네요.


우리가 속해 있는 524호에 딱 절반의 공동 지분이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523호 부장님은 종종 소외감을 느끼신다. 분명 이곳에는 부장님 소속 계장님도 근무하시고, 양쪽 검사실의 업무를 겸해 맡는 실무관님이 계신데. 우리 부장님이 525호 집무실을 두고 이곳에서 거의 생활을 하고 계셔서 그렇다. 그 덕에 앞자리 계장님은 우리 검사실 사건을 다 파악하고 계시고, 남의 사건까지 관심이 많은 우리도 정작 주임 검사이신 523호 부장님이 미처 보지도 못한 사건기록을 읽고 이미 상상 속 재판에 끌고 가 연기도 한다.


어제 발레 학원에서 과한 운동을 시켜서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간신히 눈을 뜨고 침대에서 부장님께 오늘은 11시에 출근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부장님은 그러라고 하셨다. 얼마 전, 10년 선배인 앞자리 계장님이 내게 한소리를 하시자 우리 부장님은 내가 지각한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우리 ㅇㅇㅇ파 42대손은 잘못이라는 걸 할 수가 없다고 역성을 들어주셨다.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이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먹을 수 있고. 부장님이 정성스럽게 내려주시는 커피와 차를 자리에 앉아 받아먹는 행복한 수사관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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