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것 같은데
앞으로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되도록 언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와 전혀 무관한 줄 알던 그 개념에 대해 올해 들어서야 그것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이에게 느닷없이 듣고 기분이 나빴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저렇게 말하지, 하고. 이런저런 검사 등을 토대로 보면 결과적으로 그는 나를 제대로 봤던 것이었고 치료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에 나름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그 무례를 용서하기로 했다. 언어기호학자 소쉬르는 언어가 단순히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언어의 구조가 사고의 구조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그 키워드를 인식하고 난 이후부터 별생각 없이 사계절 무릎에 두고 있던 담요를 만질 때마다 나는 불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다시 말해 내가 얼마나 안전을 요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곧 망하긴 하지만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고. 문장이 좀 모순되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공무원이므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쥐꼬리만 한 녹봉은 나올 것이다. 빚이 대부분인 데다가 투자 가치는 없지만 어쨌든 고양이 두 마리와 떠돌지 않아도 되는 내 명의의 집이 있고, 추위와 더위와 너무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를 보호할 낡은 자동차도 있다. 524호 사무실에서는 작은아버지 부장님의 극진한 돌봄을 받고 있다. 사실상 나는 24시간 벽과 지붕과 사람과 사랑 속에 보호받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왜 매일 어떤 정지나 중지나 종료의 생각이 드는지 알 수가 없다. 오늘 누가 물었다. 내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 무엇이 더 필요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 오래전 인연을 만났다.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관심이 있던 사람 옆에 있었기 때문에 종종 함께한 적이 있을 뿐이다. 최근 어떤 일로 개인적으로 이용한 느낌이 들어 부채감 때문에 내가 밥을 사기로 했다. 그 사람은 내게 내적 친밀감이 있다고 했다. 평소 가식적인 미사여구를 잘 사용하기 때문에 그 말의 진정성 여부는 알 수 없다. 나는 있는 그대로 그에게 내적 친밀감이 전혀 없었음을 고백했다.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런 태도가 좋았다. 커피를 산다고 했다.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가 문득 카페 진열장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가리키며 이것도 드시겠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이유 모를 안전함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사주겠다고 해서였는지.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오는 믿음직함이랄까, 내가 언젠가 느꼈던 깍듯함 속 은은한 곤조 때문인 건지는 알 수 없다. 평소 같았으면 사양했을 제안에 나는 흔쾌히 응하고 커피도 큰 사이즈로 얻어먹었다. 꾸벅 인사도 했다. 상대는 나보다 어린 후배다. 나는 아무리 가난해도 웬만하면 후배에게 얻어먹지 않는다. 애초 오늘의 자리는 내 부채감을 덜기 위한 자리였다. 일반적으로 내 성격상 허용하지 않던 것을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부채감이 더 생겼어야 맞는데 오늘은 그게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안전하게 여기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