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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뮤즈(Muse)

뮤즈로서의 나는

by Ubermensch






예술을 하는 사람들, 역사적으로 특히 남성 예술가들에겐 자기만의 뮤즈가 있었다. 뮤즈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존재로 예술가에게 에너지와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여신을 의미한다. 뮤즈는 특정 인물, 상황, 경험, 혹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술가의 내면에 묻혀있던 사고, 감정, 경험을 일깨워 창작을 자극한다. 그의 고독과 고통을 극복하게 하거나 반대로 일으키기도 한다. 뮤즈는 예술가에게 새로운 시각과 표현방식, 주제를 제시해 준다. 창작의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듯하다. 특히 낭만적 기질이 짙은 예술가들에게는 더욱.


종종 누군가의 뮤즈가 되는 영광을 누리곤 한다. 어떤 천재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나를 떠올리며 썼다는 작품도 여러 편 읽었다. 내가 표현한 문장이 누군가의 글에 인용이 되고, 내가 그린 그림이 누군가의 글감이 되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는 내가 제시한 주제로 수십 편의 보석 같은 글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멋진 일이다. 오늘은 내 일부가 아닌 내 존재 자체가, 어떤 사람의 인생 뮤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핏 보면 예술가들이 뮤즈를 숭배하고 추앙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조금 우쭐해 볼 수도 있겠다. 칼리오페, 클리오, 에우테르페, 멜포레네, 탈리아, 테르프시코레, 에라토, 폴림니아, 우라니아처럼 고대 그리스신화 속 아홉 명의 뮤즈 여신들과 나란해진 것 같은 기분을 누리며. 세상 속 누군가에게 내 일부 혹은 전부가 어떤 영감을 준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 고귀하고 인상적인 일이다. 외부 세계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삶의 의미를 갈망하던 내가 누군가의 세계, 나아가 그가 창조해 낸 또 다른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몹시 귀중하고도 특별한 경험이다. 누군가의 뮤즈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건 굉장한 일이다. 몹시 로맨틱하기도 하고.


하지만 뮤즈로서의 기능하는 것에 대해 마냥 환희에 찰 수만은 없다. 그곳엔 어떤 허상이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뮤즈를 이상화하는 방식은 그녀를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변질될 수 있다. 예술가가 뮤즈에게 보는, 혹은 보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 그대로를 기대하고 숭배하는 그 마음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예술가라는 주체의 시선, 권력, 욕망은 뮤즈에게 그대로 투사된다. 그건 뮤즈 본연의 고유하고 자유로운 주체보다는 어떤 대상으로서 존재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뮤즈가 됨으로써 그에게 일정 부분 통제나 종속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표면적으로는 예술가가 뮤즈를 추앙하고 숭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역방향의 역학 기류가 흐른다. 그녀 본연의 자아와 개성을 타자의 시선으로 회의하게 되고, 예술가의 사랑과 의존과 헌신의 무게를 안게 된다. 그 감정의 무게는 자칫 일종의 폭력이나 억압이 될 수 있다. 뮤즈는 예술가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감각할 줄 안다.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애초에 그렇기에 뮤즈는 뮤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자칫 어느 한쪽, 혹은 모두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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