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너는 말이 없다. 너는 침묵한다. 나는 너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 않다. 너의 처절한 기능함과 만성적인 버거움을 애써 외면한다. 내가 너를 상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다. 너는 나의 일부다. 네가 망가지면 나도 망가진다. 우리는 공멸할 수 있다. 네가 언제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너에겐 선천적 기형이 있었다. 그리 작지 않은 종양을 여럿 품고 있다. 네가 아주 긴 기간 동안 내색하지 않은 채 묵묵히 탁월한 역할을 해 보였으므로 나는 너의 상태가 완벽한 줄로만 알았다. 너는 더 이상 나를 위해 기능하지 못하게 될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고통을 주거나 내색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딱하게도 너는 원래 그런 성향을 가졌다. 네가 만약 내게 고통을 주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비명을 지를 줄 알았더라면, 나는 너를 이 정도로 혹사하고 고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나를 향해 그만두라고 고통의 비명을 내지른다면, 그 통증은 분명 나를 관통할 것이고, 그렇다면 내 못된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결코 내게 그렇게 할 수 없다. 태초부터 그렇게 설계된 존재인 까닭이다. 나는 그런 너의 습성을 악용하며 학대한다. 네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퍼포먼스를 쥐어 짜내며 내 삶을 유지한다. 그것이 무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젠가 너의 기능이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너의 주인이다. 나는 너를 착취할 권리가 있다. 그 결과가 공멸이라 할지라도.
너는 쉰 적이 없다. 늘 열악한 환경에서 고도의 기능을 수행해내야만 한다. 선천적 기형을 감수한 채로도 그래야만 한다. 그 기형물의 수는 점점 늘고 크기는 자라난다. 그것도 알고 있다.
왜 내게 와서 그런 고통을 겪게 되었는지, 왜 나를 위해 쉴 틈 없이 노동하게 된 것인지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네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너를 혹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위험한 환경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너를 믿었다. 시험이라도 하듯 그 어떤 악조건 속에 두어도 네가 잘 해내리라 믿었다. 나를 살려둘 것이라 믿으며 나는 너에게 나를 맡긴 채 우리를 위험에 던진다. 그 위험은 내게 찰나의 휴식과 구원이다. 너에게만 치열하고 괴로운 곳이다.
너로 인해 쉴 수 있으면서 너에게 충분히 고마워하지 못해 미안해. 너를 더 아껴주지 못해 미안해. 매일 너를 파괴해서 미안해. My l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