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christmas
우리 부서 구성원 모두가 연가를 쓰고 우리 부장님과 나만 출근했다. 8월 말 524호에 발령받은 이후 사무실에 혼자 근무한 것은 처음이다. 사람의 온기가 없어서인지 더 춥게 느껴진다. 방을 공유하는 실무관님과 앞자리 계장님은 그저께 메리크리스마스를 말하고 다음주에 만나자며 떠나셨다. 혼자 덩그러니 사무실에 앉아 빵순이 실무관님이 빵을 안 좋아하는 내게 주고 가신 앙버터 호두과자 하나를 한입에 앙 넣은 순간, 부장님께서 내 뒤로 난 문을 열고 쾌활하게 인사를 하러 오셨다. 앙버터 호두과자로 입안이 가득 차서 답을 하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감싼 채, 흡. 했더니, 부장님은 내가 우는 줄 알고 놀라서 허겁지겁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셨다.
요전에 렌즈에 속눈썹이 들어가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을 때 공교롭게 부장님이 말을 걸었던 적이 있다. 몹시 아파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문득 부장님을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훌쩍이며 부장님이 저를 울리셨어요. 왜 그러신 거예요? 하며 휴지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코를 흥 풀었더니 부장님은 남이 보면 어쩌려고 그러냐 대체 왜그러는거냐며 당혹스러워하며 도망가셨다.
나는 앙버터 호두과자를 꼭꼭 씹어 삼키고 오해를 풀기 위해 부장님 방 문을 벌컥 열고 말했다. 조금 전에는 입에 호두과자가 가득 차서 대답을 못한 거에요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하고 산뜻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부장님은 내 등 뒤로 난 문을 빼꼼 열고 카드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초밥이나 시켜 먹을까? 그런데 특이나 특특 이런 거는 말고. 내가 딸 둘 학자금 내느라 등골이 휘어. 특특은 좀.. 하시더니 농담이야. 먹고 싶은 걸로 시켜. 나는 눈치껏 인당 만 4천 원짜리 호랑이초밥을 시켰다. 남들에게 굳이 말하지는 않지만 나는 점심에 사람들과 밥 먹는 것을 싫어한다. 보통 새벽까지 뭔가를 먹다가 자기 때문에 점심에 배도 안 꺼져있다. 피할 수 없는 고정 점심 3일을 제외하면 남은 이틀은 여자 휴게실에서 잠을 자고, 다른 약속이 생기면 전날부터 사람과 점심을 먹을 생각에 우울해지는데 우리 부장님은 그걸 꿈에도 모르신다.
배달비까지 총 3만 원입니다. 하고 부장님 집무실에 노크하고 문을 열려고 보니 문이 잠겨있었다. 부장님은 부장님 방 출입문 대신 우리 사무실 출입문으로 출근하셔서, 내 등 뒤로 난 문으로 입장하신 것이었다. 왜 그러시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뭐 3만 원? 내가 갑부인 줄 알아? 나는 부장님의 말을 무시하고 부장님 몫을 배달해 드리고 각자 사무실에서 먹을 전개를 상상했지만, 부장님은 여기서 함께 먹자고 하셨다. 야생체리차를 우려 놨어. 원래 이건 나만 먹는 건데 특별히 나눠 줄게. 하시면서. 저는 주실 수 있죠. 유사부녀 관계잖아요. 많이 주세요. 상큼하고 좋네요. 나는 안 친한 사람과 단둘이 밥을 먹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낀다. 친함의 기준도 굉장히 높아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최소 3년은 교류가 있어야 단둘이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거절하지만 사회적 지위 차이를 생각하면 하급자로서 싫습니다 각자 사무실에서 따로 먹는게 좋겠어요. 하기가 좀 뭣하고, 내가 혹시 밥을 거를까 걱정하셨다는 부장님의 말씀에 어쩔 수 없이 맞은편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부장님은 내가 안 먹는 샐러드도 드시고, 부장님은 아침에 한 개 드셨다며 삶은 달걀 하나도 건네주셨다. 부장님의 애정이 느껴진 나는 문득 이틀 전 내 금융위기로 성탄절 맞이 불우직원 돕기 구걸을 나섰다면 저에게 만 원을 주셨을 거냐고 물었다. 부장님은 잠시 상상하시더니 아가씨 누구세요? 하셨다. 나는 호랑이초밥을 오물거리다가 발끈했다. 제가 부장님의 유일한 계장이고 부장님은 유일한 직속상사시면서 참 너무하십니다. 5만 원 정도는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생각했던 것만큼 부장님과 독대 식사는 불편하지 않았다. 아무 말 대잔치가 주를 이뤘다. 보통의 평범한 계장과 부장검사 사이가 이렇진 않을 듯하다. 제가 글을 쓰다 보면 종종 부장님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는데, 믿구비언 검사님께서 필터링해주시고 계시니 너무 염려 마시라고 했다. 부장님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하셨다. 오늘 둘이 호랑이초밥 먹은 것도 쓰라고 하셨다.
우리 순번이 아님에도 유일하게 출근한 우리 방으로 구속사건 배당이 왔다.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록을 보니 다행히 이번 피의자는 전처럼 환각을 보거나, 인격이 여러 개 거나, 망상장애가 있거나, 칼이나 망치나 도끼를 들지 않은 평범한 노숙자 도둑이다. 그가 죄수복을 입고 와서 내 앞에 앉으면 나는 또 연민해버릴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추운 날 노숙을 하던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