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인생 첫 발레 공연을 봤다. 실제로 본 발레리나 발레리노라곤 발레학원 선생님들이 전부였는데 연말 선물로 세종문화회관 유니버설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예매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3만 원짜리 티켓을 끊었기 때문에 좌석이 무대로부터 아주 먼 곳이었다. 실루엣이나 보일까 싶어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하려고 했지만 늦어서 이미 남은 게 없었다. 무용수들의 이목구비나 손끝 발끝까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정 중앙 좌석이고 독무보다는 군무가 많아서 감상하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티비로 피겨나 성악 무대를 볼 때는 소름이 돋고 벅찬 감정이 들고 심장이 두근두근했는데, 발레를 이제 몇 년 배운 상황에서 공연을 보니 순수한 감탄보다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발레를 접한 게 꽤 아쉬웠다. 발레 학원에서 발레리나 선생님들도 내게 몸매 관리 비법을 묻고, 무용수들의 몸이나 내 몸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점이 특히 그랬다. 무용할 몸은 타고나는 게 크다. 무용하는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도 어릴 때부터 무용을 전공했더라면 저렇게 반짝거리는 의상을 입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 빛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성당에서 성탄절 공연을 할 때나 학창 시절 종종 무대에 설 일이 있었다. 그때의 흥분과 두근거림이 떠올랐다. 몇 년 뒤면 마흔 살이 되고 이다음에 잘하게 되면 비전공자 콩쿨을 나가 볼 생각도 있지만 프로 발레리나를 보며 저 정도는 정말 어린 시절부터 아주 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가능하겠구나, 다시 태어나야 저런 무대에서 저런 공연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물론 그 세계에 발을 들인다고 해서 모두 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독무나 파드되를 출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마치 무대 장식처럼 자리만 채우는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되는 수많은 무명 발레리나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다음 생에는 참 하고 싶은 게 많다. 차라리 내가 공부를 못했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 선후배 동기들이 내 꿈을 대신 이루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지금 다니는 회사의 내 자리가 덜 비참했을 텐데. 차라리 내가 발레에 관심을 갖지 않고 배우지 않았더라면 발레 공연에 그저 순수하게 감탄만 할 수 있었을 텐데. 내 삶은 참 애도할 게 많았다.
토요일만 해도 눈을 떠보니 이미 해가 진 때였다. 꿈을 많이 꿨다. 서른 중반인데 아직도 어린 시절 모습의 꿈을 꾼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서러움에 겨워 또렷하게 내뱉는 잠꼬대를 내 귀로 들으며 깨어났다. 꿈은 나를 이용한 사람의 비싼 차를 내가 몰 수 있었다. 내가 혼자 몰고 그 사람의 집 앞에 주차를 해두었는데 나는 왜인지 그 차 뒷좌석 밑에 웅크려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용당했기 때문에 몰 수 있던 그 차를 우리 가족들이 몰래 이용하고 있었다. 그게 싫었다. 그래서 대체 왜 그런 거냐고 따졌고 그게 육성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대체 왜 그럴까. 나는 왜 이런 꿈을 아직도 꿀까.
잘못 태어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그냥 바보나 동물이나 뚱뚱한 돼지나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
회사에 와서 고추짬뽕밥을 시켜 먹었다. 예전 사무실에서는 짬뽕을 먹을 때 옷에 국물이 튈까봐 우비를 입고 먹었고 그 모습을 본 어떤 검사님은 내가 몸으로 웃긴다며 웃기만 했다. 우리 부장님은 내가 비옷을 입고 짬뽕을 먹는 모습을 보고서는 어느 날 식당에서 앞치마를 얻어다 주셨다. 그 앞치마를 입고 짬뽕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주말 밤에도 여지없이 출근해 계셨다가 내 인기척을 듣고 찾아오신 부장님께 처음 발레공연을 보고 온 이야기를 했다. 다음 생에는 발레를 전공할 수 있으면 좋겠고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부장님은 내게 톰크루즈를 좋아한다고 톰크루즈가 되냐. 영화를 좋아한다고 영화배우가 될 수 있냐고 했다. 부장님은 내 다음 생의 희망마저 짓밟은 것이다. 다음 생엔 그냥 들풀이나 토끼로 태어나는 게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