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좀도둑

한겨울의 노숙자

by Ubermensch






10년 전 검사실에서 두어 번 조사를 한 적이 있긴 했다. 그땐 이십 대 뽀시래기시절이라 가진 건 무지에서 비롯된 패기밖에 없었고 앞에 계시는 계장님이 메신저로 아바타 조종하듯 내게 팁을 주시며 상황을 감독해 주셨다. 이후 총무, 사건, 집행, 소송, 관리 등 본격적인 수사 외 업무를 쭉 거쳐 중요경제범죄를 조사하는 이곳에 오기 직전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부서에 1년 반 근무했다. 재판 담당 부서에서는 수사를 할 일이 크게 없다. 이미 전반적인 수사를 마친 후 재판에 이르기 때문이다. 간혹 재판 과정에서 위증을 하는 증인이 나올 경우 자체적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누군가 위증을 할 때마다 믿구비언 검사님께서는 내게 사건을 선물처럼 가져다주셨다.


조사 경험이 9년 전이라 단독 조사를 하는 게 너무 떨려서, 잠도 못 자고 얼마나 요란을 피웠는지 모르겠다. 검사님은 완벽할 필요 없다. 위증 부분만 한정해서 보면 된다. 조사는 질보다 양이다. 많이 하다 보면 늘게 된다고 부담을 덜어주려 하셨지만, 원래 피고인이 받던 재판의 사건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채로 증인의 위증을 조사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나와서 당황하면 기세에 눌리게 될까 봐, 주말에도 나와 수 주를 투자해서 글로벌 코인 사기사건 기록 십 수권을 열심히 공부했다. 재판을 담당하는 부서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사검사실처럼 정식으로 조사할 장소도 없어서, 믿구비언 검사님은 검사님들이 간식을 드시는 담소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놓고 조사를 하라고 하셨다. 그곳에서는 전혀 권위가 살지도 않을뿐더러 보는 눈도 많기 때문에 나는 검사님이 농담을 하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셨고 검사님은 검사님 자리에서 내 삐약거리는 조사 상황을 지켜보시려는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검사님들이 여럿 계신 그 큰 사무실 문에 에이포용지에 조사 중이라는 문구를 크게 써붙여놓고 되도록 아무도 나를 보지 않기를 바라며 떨리는 9년 만의 단독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장어처럼 능글능글한 할아버지는 내가 사전에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질문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기 바빴다. 이러구러 조사를 마치자 믿구비언 검사님께서는 첫 조사치고 기대 이상으로 잘했다며, 두세 번만 더 하면 누워서도 할 수 있겠다고 내 기를 살려 주셨다. 조사는 기세가 중요한데, 목소리를 키우면 낫다고 팁을 주셨다. 그게 불과 반년 전이다. 나는 그사이 조금 더 자라서 이제 참고인이나 증인 피의자뿐만 아니라,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차고 꽁꽁 묶여와 무서운 포스를 보이는 구속 피의자도 아무렇지 않게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경험이라는 게 그렇다. 쌓이면 여유를 준다. 이젠 나도 제법 그럴싸한 수사관이 된 것 같다. 멋지고 넓은 책상도 생기고.


어제는 서른 초반의 젊은 노숙자 피의자가 내 앞에 앉았다. 남이 흘린 카드를 주워서 700원짜리 아이스크림과 800원짜리 커피를 사 먹고 다이소에 가서 생필품을 샀다. PC방이나 찜질방에 가서 겨울밤을 보냈다. 기록을 먼저 봤을 때는 내가 슬퍼할 줄 알았다. 요즘 이 날씨에 노숙을 하다 구속됐기 때문에. 하지만 실제로 그를 마주하자 나는 답답해졌고 그래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게 됐다. 사람을 해치거나 중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길에서 남의 카드를 주워 음식을 사 먹고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속상하고 약간 화가 났다. 왜냐면 그는 서른 초반의 신체 건강한 남자였으므로. 왜 그렇게 살게 되었지에 대해 물었다. 가족은 있는지, 군대는 다녀왔는지, 경제활동을 해본 적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일을 해 본 게 언제인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건지.


그는 내게 이제 나가면 앞으로 이렇게 안 살겠다고 했다. 이곳에 오기 전 동사무소와 자활센터에 가서 일자리를 신청해 두었다고 했다. 그렇게 일해서 돈이 생기면 고시원을 구하고, 새롭게 살겠다고 했다. 그 말이 꼭 사실이고 그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한 평짜리 고시원일지라도 공부에 등록된 거주지가 있었더라면, 남의 카드를 주워서 그 정도 금액을 사용한 범죄로 구속까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얼른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