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지옥
장장 열두 시간의 지옥에서 고문을 견디고 살아 돌아왔다. 지난밤 십수 년 만에 찾은 캠퍼스의 추억이고 나발이고 즉흥적 외박으로 새벽 두 시 반까지 이어진 지난날의 복기는 가혹한 고문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오늘 갇혀 있다 온 곳은 가만 지옥이다. 차라리 주리를 틀리거나 어떤 노동을 하는 지옥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오늘 변호사시험 감독관으로 차출되어 갔던바, 구체적인 역할은 당일 이른 아침 시험장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간단한 복도 점검과 마무리 정리만 하면 되는 본부 요원, 시험관리관 정, 시험관리관 부, 보조대학생 등으로 구분됐다.
가장 책임이 없고 자유가 보장되는 일이 주어지길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가장 책임이 많은 시험관리관 정이 되었다. 부는 내게 구속 피의자를 운송해 주곤 하는 옆동네 구치소 교도관이었고, 옆에 있는 보조대학생에게 어느과냐고, 나도 이 학교 국문과 출신으로 까마득한 선배일 것이라고 늠름한 척을 해보았다. 자신을 전자과라고 소개한 귀여운 얼굴의 그 애는 자못 근엄한 얼굴로 본인은 휴학을 오래 해서 나이가 많다고 했다. 아무리 휴학을 오래 했어도 십 년 이상을 하진 않았을 것인데 본인과 내가 별로 차이가 안 난다는 듯 나이 유세를 하기에 귀엽고 가소로웠다. 나름대로 학교에서 훈남 공대 선배로 불릴 듯한 인상이지만. 내가 보기엔 귀여운 뽀시래기였을 뿐이다. 함께 근무한 것도 인연이니 밥 잘 사주는 까마득한 화석 선배가 되고 싶었지만, 와인 한 병 반을 먹고 4시간을 자고 겨우 끌려 나온 나로서는 그럴 기력이 없었다.
각 시험장에는 수험생이 서른몇 명씩 입실했다. 늘 다채로운 장애를 안고 있는 구속 피의자만 끌어당기는 나만의 특별한 기운이 여기서도 작용한 탓인지, 내가 맡은 시험장은 수험생이 두 명뿐이라고 했다. 중간중간 눕거나 뭘 먹거나 약을 먹거나 하는 일이 있으니 적의처리를 하라고 했다. 부 교도관과 뽀시래기 대학생과 함께 시험장에 가보니 그나마 두명중 한 명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 시험장을 혼자 쓰는 수험생은 확실히 특별했다. 필기구를 제외한 모든 소지품을 다 치워야 했지만 안 치우는 소지품이 참 많았다. 옆에는 라꾸라꾸 침대도 있었다. 무슨 천식 스프레이 같은 것도 있고, 이상한 물리치료기도 있고, 안약도 있고, 핸드폰도 두대고, 손톱깎이와 쪽가위도 있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손톱깎이와 쪽가위를 옆에 두고 있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더니 손에 거스러미가 생기면 거슬려서 자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전에 나를 몹시 아끼고 챙겨주셨던 사수 계장님이 나보고 손톱 옆에 생긴 거스러미 같은 인간이라고 윽박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계장님은 서른이 넘은 내가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다며 그렇게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챙겨주시더니, 내게 사전에 상의도 없이 사직을 해버리셔서 몇 시간이나 통곡을 했었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특별한 수험생이 혹시라도 문제가 안 풀릴 경우 손톱깎이에 달려있는 작은 칼과 쪽가위로 몹쓸 행동이라도 하고 싶어질까 봐, 거스러미는 좀 참고 쪽가위와 손톱깎이만큼은 빼서 가방에 넣는 게 좋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다행히 그는 내 지시에 순순히 응해줬다. 그리고 그는 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우리 감독관 셋을 바라보며 삼대 일은 너무한 것 아니냐. 한분은 주무셔도 될 것 같다. 차라리 다른 수험생이 많은 시험장에서 보는 게 더 낫겠다. 감독관 세명에 수험생 하나라니 부정행위를 하려야 할 수가 없는 구조 아니냐. 그래도 말을 잘 듣겠다면서 수시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다른 시험장은 수험생이 수십 명이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서명을 하고 안내를 하고 검사를 할 것도 많은데 우리는 수험생이 한 명밖에 없으니, 순식간에 할 일이 끝나버렸다.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고,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컴퓨터를 쓸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고, 화장실에 갈 수도 없고, 소리를 낼 수도 없는 숨 막히는 상황에서 나는 폐암처럼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으며 가만히 있기 지옥 속으로 침잠했다. 몸이 굉장히 안 좋다는 수험생의 컨디션을 망치게 했다가는 소송을 당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했으므로 우리는 더욱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며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험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7시까지 총 3교시였고 굉장히 길고 지루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수험생이 내게 말을 걸어줘서 그나마 잠시 가만 지옥에서 구제될 수 있었다. 물 마셔도 되나요? 저밖에 없는데 신분증 검사는 매 교시마다 하실 건가요? 너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시는 것 아닌가요?
나는 그를 너무 뚫어져라 보면 부담이 될까 봐, 또 안 보면 방치한다고 생각할까 봐, 시선을 적절히 분배하고, 쏟아지는 잠과 따분함을 참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시험장에서 보내는 숨 막히는 그 긴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호러동화 한 편, 범죄 스릴러 한편, 로맨스 소설 한 편이 창작되었다. 그래도 남은 시간은 한도 끝도 없었다. 차라리 시험을 보고 싶었다. 시험 문제라도 볼 수 있다면 답이라도 상상해 볼 텐데. 시험관은 아무것도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나무 같은 존재였다.
열두 시간의 고문을 마침내 겪어내고, 특별한 수험생에게 노고를 치하받은 뒤 시험장을 나온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차를 댄 주차장을 오랫동안 찾을 수가 없었다. 어두워지면 나는 시력을 잃고, 길은 원래 잘 못 찾기 때문이다. 사실 아침에도 학교 내에서 길을 잃는 바람에 지각을 해서 책임자에게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달려갔고, 점심에도 잠시 나갔다가 길을 잃고 또 전화를 받고 달려갔다. 그곳이 내 모교인 것은 상관이 없다. 나는 인문대생이었고, 제3법학관은 마치 미로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구조였으며, 내가 학교를 다닌 것은 십 년도 더 전이었고, 그때는 내게 차도 운전면허도 없었고, 밤에는 원래 눈이 잘 안보이며, 나는 늘 길을 잃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끔찍했던 가만 지옥을 벗어나 집에 잘 왔으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