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몸도 안 좋고, 내일 일찍 일어나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자고 싶지 않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계획 없이 외박한 주인으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오늘 저녁 끼니를 굶게 됐다. 나는 한겨울의 길고양이들을 생각한다. 길고양이들의 수명은 평균 3년이라고 한다. 우리 집 첫째 고양이는 2011년생, 둘째 고양이는 2016년생이다. 첫째 고양이는 대학 때 남자친구가, 둘째 고양이는 입사 후 선배 남자친구가 데려다 줬다. 그 애들은 지금 16살, 11살이다. 길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의 4,5배는 살았으니 하루정도 굶는다고 큰일이 나진 않을 것이다. 나도 가끔 밥을 안 먹는 날이 있다. 나는 유난스러운 동물 애호가는 아니다. 그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보호자일 뿐이다.
나는 HSP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세상 만물을 예민하게 지각하고 감각한다. 우리 믿구비언 검사님은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내가 주장하는 HSP가 허튼 소리 팡팡의 약자가 아니냐고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정작 그런 검사님은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도 저 먼 곳에서 검사님을 향하다 돌아서는 내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나인줄 알아채는 예민한 사람이다. 원래 끼리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서로 욕을 해가면서 때로는 의지도 하고.
허튼 감상에 젖거나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되도록 안 하려는 편이다. 그렇게 어딘가 수렁에 빠져버리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나는 인과관계라든지, 귀책사유라든지, 대책이라든지 뭐 그런 이성적인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한다. 그러면 뭐든지 한결 낫다. 감정의 낭비는 사람을 너덜너덜하게 만든다. 수분도 빼앗긴다. 사람은 수분이 넉넉해야 한다. 그래야 동안으로 살 수 있고. 충분한 수분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다.
그래도 가장 순수하고 찬란했던, 굳이 이런 낯부끄러운 수사를 붙이긴 싫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던 스물몇 살 대학시절의 장소에 머무르다 보니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그 시절의 사람이, 사랑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의 최종적인 내 현실이 크게 달라져 있다거나 그 무렵 했던 순간순간의 내 선택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른이 된 내가 평가하는 현재 관점과 기준에서 하고자하는 선택과 그 당시의 최선이 꼭 일치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 당시의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으로 믿는다. 나는 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이곳의 지형지물은 많이 바뀐 것 같다. 해가 지고 운전해서 오느라 주변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대충 그래보인다. 바뀌지 않은 건 나뿐이다. 조금 생기를 빼앗기고, 지치고,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한풀 꺾인 것만 제외하면. 나는 여전히 그대로다. 너무 여전해서 갑갑할 지경이다. 조금 달라졌더라도 좋았을 것 같고, 고집스럽게 달라지지 않아서 좋은 것도 같다.
예뻐 보이려고 얇게 입고 오들오들 떨었던 봄밤이 떠오르고, 엉엉 울며 못된 말을 쏟아붓던 여름밤도 떠오르고, 홍대 카페에서 예쁜 하트모양 아트가 있던 라떼를 나눠 마시던 가을밤도, 꽁꽁 언 내 손을 카키색 코트 주머니에 넣어 녹여주었던 겨울밤도 떠오른다. 그냥 그뿐이다. 떠오르는 게 많은 밤이다. 그래서 잠이 잘 안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