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사랑에게
내일 아침 일찍 변호사시험 감독관으로 강제 차출되어 근무하게 됐다. 근무지가 공교롭게도 내 모교여셔, 모처럼 감기에 걸려 열도 나고 몸이 쑤시는데 헤롱헤롱한 상태로, 안 그래도 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 일찍 일어나 강을 건너 장거리에 제시간에 도착할 자신이 없어 학교 인근에 방을 잡았다. 이곳에 굉장히 오랜만에 왔다. 이십 대 초반 추억이 가득한 곳에 서른 중반이 넘어서. 취해서 자세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십년이 지나면 산도 바뀌고 물도 바뀌고 뭐 그런다고 했던 것 같다. 자세히 생각하고 싶지 않다. 추억도. 시간은 지나고 나면 모든게 괜히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아서 아쉽고 슬퍼진다. 사실 꼭 그렇게 엄청난게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떤 필터라도 쓰이는 건지.
교내 신문사에 들어갔었다. 그냥 동아리가 아니라 나름대로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장학금도 주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군기도 셌다. 왕십리 어느 술집을 빌려 큰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말해야 했고, 목소리가 작으면 물에 적신 휴지가 내 얼굴 옆으로 날아왔다. 수습기자는 먼지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전 대통령의 서거날, 처음으로 외박을 했었다. 내 남자친구는 처음으로 외박한 나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밤새 내게 편지를 썼다. 그날 강원도 사투리를 쓰던 어떤 동기가 내게 뽀뽀를 했다. 주로 술에 취해있고 아빠 품에 안겼을 때 익숙하게 맡던 담배냄새가 나던 애였다. 인문대에서 가장 잘생기고 몸도 좋고 성격도 좋고 누가 봐도 완벽하던 내 남자친구와 달리, 늘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던 애였다. 그 애는 그날 밤 술과 담배 냄새를 내뿜으며 내게 뽀뽀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다음날 나를 걱정하며 편지를 써서 나를 만나러온 남자친구에게 지난 밤 이야기를 했다. 그 애는 손을 떨며 간밤에 쓴 편지를 건네줬다. 그 편지에는 나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전에 써줬던, 가방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편지를 내게 다시 돌려주고서는 일단 가겠다고 했다. 내게 화도 못 냈다. 나는 변명을 하거나, 미안하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친구가 안쓰러웠다고 했다. 아빠 생각이 났다고 했다. 너랑 달라서 뿌리칠 수가 없었다고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고있었다. 내 남자친구가 비록 상처받았을지언정 나를 놓아버릴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 애는 내게 사랑한다고 자주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못 돌려줬다. 그 말을 들으면 도망갔다. 사랑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애는 내게 혼인신고를 하자고 했다. 나는 우리가 너무 어리다고 했다. 나는 그 애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었다. 내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남자 중 최고의 남자라고, 그 당시에도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주로 상처만 줬다. 그 애는 나를 존경한다고 했다. 그때 혼인신고를 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그 애의 첫사랑이었다. 나는 그 애를 종종 울리곤 했다. 나도 자주 울었다. 원래 잘 울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듣던 전공 수업 서적에, 학교 엘리베이터에, 함께 자주 가던 술집에, 인문대 앞 농구대에, 그러니까 지금 오늘 내가 혼자 머물고 있는 이 숙소 근처 곳곳에 우리의 스물 초반 흔적들이 많이 있다. 정작 우리는 성인의 밤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 그 애는 눈동자에 내 얼굴이 다 비칠 만큼 눈이 컸다. 나는 그 커다랗고 예쁜 눈에 자주 입을 맞췄다. 그 큰 눈에는 나만 가득 차 다정하게 빛났고 그 반사빛이 나를 반짝이게 했다.
그때 그 뜨겁고 커다란 손을 놓지 말걸. 하는 후회가 드는 날이 있다. 내가 분홍색 후드티를 입고 흰색 컨버스를 신고 너에게 안겨있던 스무 살의 어느 날이 생각나는 밤이다.